林森의 招待詩 - 시간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5/08/23 [08:25]

林森의 招待詩 - 시간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5/08/23 [08:25]

  © 림삼

 

** 림삼의 초대시 **

 

- 시간 -

 

시간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어

창 밖 밤비 그친지도 오래

그걸 바라보고 있는지도 그 보다 오래

이 자세로, 어둠 속에

어둠과 하나된지도 그 보다 더 오래

더 더 오래

 

여긴 어디일까 ?

뿌우연 바다 속처럼 낯설어진 이 방

정지된 시간

본래 시간이란 없어, 시간은 애초 존재하지 않아

다만 네가 시간은 있는 거라 우기는 거지

시간 가두기 위해 시계 만들더니

나중엔 수갑도 만들어내고

 

죄 지은 자는 시간으로 죗값 치르게 하고

죄 없는 자는 시간 팔아 밥벌이 시킨다면서

가소롭게도, 너는

 

거대하고 더러운 벌레 배 밑에 깔린 듯

어둠 속에서 몸 뒤척인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벌레야

기다리면.... 정말,

더럽게 안가는 게 시간이지

 

- 시의 창 -

 

어쩐지 만만챦은 배경이 깔린 시 같다. 많이도 음습하고 무척이나 퇴폐적인 기운이 배어있는, 어쩌면 읽기조차 싫어지는 시다. 모름지기 시라고 하는 게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망과 꿈을 실어주거나, 다정다감한 마음이 샘솟게 만들어주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건데. 아니면 금방 보고 나서도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다분히 사랑스러운 시어로 엮여져야 하는 건데, 필자의 시는 왜 대부분이 이렇게 칙칙하고 고뇌와 원한만 가득 가득 들어차 있는 겐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혼자 세상의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필자의 시풍은 아주 어렸던 시절부터 형성되었던 듯 싶다. 녹록치 않은 가정 환경과 살림살이로 어렵게 학교 공부를 마친 필자의 삶은 일찍부터 비교적 순탄치만은 않았다.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학창시절을 보냈다기 보다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날 그날을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절을 살아왔다고 여겨진, 축복받지 못한 삶의 시작점이었다. 아마도 세파에 일찍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 처지였던 것 같다.

 

그렇게 고통과 번민을 남보다 일찍 알게 되다 보니 생각이 많아지고, 돌파구나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생각의 탈출로는 자연스럽게 낙서나 넋두리의 되새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버릇들이 모아지고 자라나더니 어느날부터 소위 시라고 하는 모듬체로 형성되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핑계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굳어진 필자의 시풍은 반백 년을 지나, 일흔을 넘긴 이즈막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어두운 색깔의 시를 자아내는 오래된 버릇으로 굳어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어둠에 일찍 물든 시풍은 그 후 인생의 굴곡을 넘을 때 마다 여지 없이 어두운 시들을 양산해냈다. 오히려 밝고 흥겨운 시절에는 시를 짓지 못하다가, 버겁고 힘겨운 삶의 질곡에서는 쥐어짜듯 시들을 쏟아내곤 하니 이야말로 음침한 시의 향연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어쨌든 그렇게 필자의 시는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려질 수 밖에 없는 길을 스스로 걸었다.

 

이 시도 정말 견디기 힘든 어떤 시절의 고백이었기에, 지금 되돌아보면 새삼 살 떨리는 기억이 새록이 되살아나 소름끼치지만, 아마도 다른 이들은 전혀 모르리라. 또 한심하게 그 타령이겠거니, 하고 코웃음 칠지 모를진대, 필자의 이 시절은 아득하고 암담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건진 것이 하나 있다면 필자 자신의 모습을 정말 철저하게 분석하고, 신랄하게 파헤치는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의 본질과 근본적인 품성은 물론이고, 근원적인 미움과 사랑의 인과를 파헤치며 처절하게 반성하고 후회했던 어떤 시절의 이야기가 이 시로 표현되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진한 번민의 결과로 해답을 찾았다거나 방향을 잡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냥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훌쩍 자라난 자아가 또 다른 필자의 얼굴을 발견하는 횡재를 얻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러도 무방한 안하림작가는, “고대부터 아니 어쩌면 태초부터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인간은 존재성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형상을 볼 수 없는 것에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수선화의 속명 나르키수스. ‘그리스 신화에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 속에 빠져 목숨을 잃은 나르시소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수선화는 고결, 자만, 자아도취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꽃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선화는 거울에 빠져 사는 여인을 비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자만한 것을 가리킨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수선화와 여인들의 거울 사랑은 어딘지 모르게 상관관계가 있는 듯 하다. 이렇듯 자기 얼굴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건, 생물학적으로도 확실한 근거가 있다.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 외부 시각 자극은 모두 뇌의 뒤쪽 부분에서 받아들이는데, 유일하게 얼굴만은 감정을 담당하는 측두엽에서 처리한다. 그래서 타인은 물론 자신의 얼굴이 다른 피사체에 비해 훨씬 더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도 오직 자기 얼굴을 먼저 인식한다.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되면서 하는 반응, 즉 감정적 반응이 극대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지금 유행하고 있는 셀카도 어쩌면 기술과 융합한 자기인식인 동시에 관계적 욕구의 표현이다. SNS 열풍과 함께 셀카가 이제 생활 속 일상이 되어버린 셀카족(셀피)들이 많다. 세상은 문화와 함께 변화를 거듭하고 진보된 기술과 함께 셀카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칫 본질이 빠진 현상으로 왜곡되어 현상만을 사고 파는 물질 문명의 폐허가 확산될까 우려된다.

 

시의 창 방향이 조금 다른 쪽으로 빠지는 듯 하긴 하지만, 물론 때마침 불고 있는, 인문학의 회귀 바람은 우리 시대가 지나치게 현상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우려한 순리의 개입이 아닐 수 없다.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를 찾고 있는 인문학을 셀카라는 현상과 함께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야말로 신인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삶 곳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어깨 위에 나의 짐이 아닌 것을 올려놓으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선을 긋고 짐을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단호해진다는 것은 불친절하고 비인간적이며, 제 잘못도 모르는 뻔뻔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 들 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때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서라도 단호해져야 한다. 원하지 않을 일을 하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단호할 때 우리는 문제에 충실하면서 우리 자신과 권리를 지킬 수 있다. 소극적일 때는 문제를 회피하며 자신을 잘못된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반면에 공격적일 때는 남을 비판하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단호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 대화의 단절이나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대화와 교류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면, 우리의 대인관계가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야 할까? 또한 우리의 태도와 처세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디일까?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비가 그렇게 내리고 눈이 그렇게 내리고 또, 강물이 그렇게 흘러가도 바다가 넘치지 않는 건

물고기들이 먹어서이겠지.’ 어느 초등학생의 동시다. 보통의 어른들은 생각을 복잡하게 하고 행동을 이익에 맞춰 하게 되며, 치우친 생각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아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판단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생각나지 않던 것이 생각나며, 판단할 수 없던 것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에디슨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이다.” 라고 말했다.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거울에서조차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필자같이 어리석은 어른들에게 가르쳐야 할,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바로 동심의 눈이다. 어린 아이의 마음이다.

 

오늘은 작심하고 어린 아이의 생각으로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한 번 써보자. 10년 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10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쓸 때만큼은 가장 확신에 차 있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희망을 줄 수 있다. 흐르는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고, 그 시간을 정복하여 소망과 꿈의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의 삶으로 흐를 것이다.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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