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 시편 119편 107절 -
사실 이건 비밀입니다
누구 앞에서도 내색치 않았지만 난 그 세상 그리워 미칠 지경입니다 그 세상의 혼란은 물론 부패해 냄새나는 모습까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러고보면, 그 세상이 면죄부 팔아 돈을 버는 도시라면 이 세상은 죄를 팔아 살을 찌우는 도시입니다 탐심 허영심 시기심 욕구.... 모든 죄의 뿌리는 바로 이 세상에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제외된 느낌, 그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느낌, 일테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정처없이 한잎 가랑잎으로 떠다니는 느낌, 그렇습니다 내 서러운 영혼은 그 세상 삶을 떠나지 못합니다
불어오는 바람, 흐르는 세월에 나 완전히 맡긴 채 늘 긴 방황의 이 세상 삶 시작하며 무언가 그 세상 삶에 집착하여 번득이는 눈에는 특별한 광기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건 집요한 원한 같기도 하고 은밀한 간원 같기도 하며 어느 땐 단단한 절망 같기도 하여 망치로 발등 찍는 느낌입니다
그 세상은 얼마나 막막한지, 이 세상 삶은 얼마나 깊은지, 사람과 사람 사이는 또 얼마나 먼지, 그 세상 깊은 웅덩이에 발 헛디디던 아득함 몰려옵니다
어리석은, 어리석은이란 말이 요행의 실마리되어 내부 떠돌아 다닙니다
이 세상 삶은 영원한 변주, 끝나지 않을 배회, 어두운 기억의 문 열어 상처입은 영혼 위무하려는 간절한 몸짓, 감각 세계 위로 떠도는 허무한 공식인가 봅니다
딴에는 슬슬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태엽감는 오르골인형마냥 이 세상에서 북만 치며 돌고있어야 하는지, 그 세상의 크고 작은 무대, 무대들....
생각해보니, 어려운 시기에 절망하기는 얼마나 쉬운가요? 허망해져버리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입니다 정작 이 세상에서 날 살게 만드는 건 깊은 곳 따로이 있습니다 형벌처럼 마음 깊숙히 새겨진 단어 하나, 희망 ! 맞습니다, 그건 희망입니다 그 세상 향한-
그러므로 지금이라면,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 시의 창 -
많이 망설이다가 이 시를 골랐다. 이 코너에 이리 긴 시를 옮겨도 되는 건지 조금 조심스럽다. 이 시는 일테면 장문의 영혼시다. 속속들이 고백하기는 힘든, 예전 어떤 시절의 깜깜하고 절망스런 날들을 견디며 적었던 독백이라고 할까? 아무튼 지금과는 많이 다른 그 세상의 진실과 정의를 나름 곱씹으면서, 적응하려고 딴에는 무진 애를 썼던 아픈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와서 새삼 이 시가 왜 눈에 띄었으며 필자의 관심을 다시 끌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도,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이 현실도, 비단 녹록치만은 않다는 사실이, 세상의 삶살이가 결코 수월치만은 않다는 오래 된 숙제가 뇌리를 짓누르는데, 무심한 아침의 햇살은 변함없이 능청스레 온 누리로 퍼져간다. 아마도 그래서 불쑥, 무언가가 사무치게 그립던, 보이지 않는 소망이 꿈처럼 기둘려지는 소박한 심상이던, 그 시절과 이 아침이 퍽도 많이 닮아있는 듯 하여 언뜻 눈길이 가게 되었는지도.
허기사 너나 할 것 없이 살기가 참 많이도 버겁다. 도대체가 걱정 근심이 끊이질 않는다. 인생이 고해라고 했으니 애저녁에 탄탄대로야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너무하다. 어찌 자고나면 사고요, 눈 돌리면 사건이며, 숨만 쉬어도 사단이 나는지 도무지 어지러워 살 길이 없다. 그냥 조용히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필부들도, 세파에 휩쓸려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면서 하루들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건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지구촌이라고 하여 온 세상이 사통팔달로 이어지다보니 먼 나라의 사정이 인근에서의 일처럼 세세하고 신속하게 알아지는 문명 발달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남의 나라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죄다 걱정하고 인상 써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반대급부로 감당해야 하는 필요악인지는 모르겠다. 예컨대 오지랖이 넓어서가 아니라 눈 뜨면 저절로 보여지고 들려나니 안 볼 수도, 안 들을 수도 없음이라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물론 만사를 다 참견하고 신경 쓴다 해서 해결할 것도 없고, 제시할 해답도 없다. 그러니 그냥 팔자 편하게 내 할 일 하고 살아가면 그만이다.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세상인 것을,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쉽다. 참으로 쉬운 처사다. 그렇게 간단명료한 길을 필자는 왜 찾지 못하고 헤매 도는 것인지. 알기는 아는데 행동할 줄 모르는 위인이라 세상 근심 다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필자의 미련함은 그래서 역시 오늘도 무지 분주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강원도 구석에서, 필자는 오늘도 스스로 지구를 구할 독수리 5형제의 일원이 되어, 전 세계의 인류와 자연의 영원한 안정과 번영을 위한 디딤돌을 장만하느라 꽤나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 정도의 정성과 노력이라면 이젠 다른 사람들이 좀 봐주었으면 하는데, 그래서 큰 바위 얼굴처럼 지역을 위해 큰 일 할 사람으로 추천 좀 해주기를 바라건만, 아직도 아무도 필자의 이 거룩한 행적을 눈여겨보지 않으니 아무래도 이 쯤에서 혼자의 고행은 접어야 할 듯 하다. 그냥 예전 하던 일이나 하면서, 세상은 세상대로 굴러가도록 놓아주어야겠다.
평소와는 달리 객젓게 농담이나 하면서 시의 창을 적는 이유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 첨언한다. 실은 얼마 전 상담 자리에서, 필자의 시의 창을 본 어떤 사람이 작심하고 필자에게 쓴 소리를 하셨다. 매 주 좋은 글을 올려주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천편일률적으로 교장 선생님같은 훈화만 가득하니 지루하고, 내용인즉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안 읽게 된다면서, 가벼운 농담도 좀 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가끔 섞어서 사람 냄새가 나게 글을 써가라는 당부였다.
얼굴이 달아올라서 아무 답변도 못하고 긍정의 고개짓은 했지만, 내심으로는 불쾌하고 가소로워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도 평생 시를 쓰고, 유명강사로 사람들에게 딴에는 인기도 좀 있던 필자인데, 참견도 아니고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사족을 다니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인가? 그래서 그 자리를 얼른 피하고 돌아섰는데, 그리고 잊어버리려고 쉽게 생각했는데 웬 걸,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어찌된 셈인지 점점 더 그 목소리가 커지면서 환청처럼 계속 귓전에 들려나는 것이었다.
이제껏 쌓아온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충격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갑자 이상 갈고 닦은 아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제법 소문난 강사였다는 자부심이, 좋은 시를 쓴다는 행복감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기본위적인 판단이며, 다분히 자기만족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높이, 귀넓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전달자의 기본 자세이며 예의입니다.” 그토록 시시때때로 강도 높게 주장하던 필자의 강의 내용이 도대체 누구 들으라고 한 소리였을까? 어떤 제약이나 조건도 해당되지 않을 만큼 필자의 수준이 높고, 실력이 탁월하다는 오만과 자긍심이 순간의 착각이요, 한낱 모래성이었구나 하는 후회와 재인식이 필자의 머리에 선명하게 화인을 찍었다.
“행복하세요. 하지만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진 마세요. 나로 인해 그 누군가는 아파야 하거든요.” 개인의 행복이 비록 남의 불행을 딛고 서지 않았다 해도, 남을 무시하고, 남의 사정이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혼자만의 행복이라면 그건 가치가 없다. 무엇보다도 행복은 공유다. 행복의 조건은 배려다.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남을 먼저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최소한 그런 노력부터 고려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행복의 항아리는 뚜껑이 없다. 울타리도 없으며 주인도 없다. 부족한 사람은 가지고 가고, 넉넉한 사람은 채워주기에 한 번도 비워지는 경우는 없다. 만일 지금 행복이 넘친다면 살짜기 채워주고 가자. 당신의 배려에 희망을 얻는 사람이 있을 거다. 당신의 행복이 부족하다면 빈 가슴을 담아 가자. 당신의 웃음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오늘 저 빛나는 햇살을 보니 필경 필자에게도 조금 남는 삶과 사랑의 희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필자는 아주 조금만 채워주고 가려고 한다. 오늘 삶과 사랑에 힘겨웠다면 누군가 내일 아니면 그 훗날에 다시 행복의 항아리를 채워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필자는 이제 고백한다.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되든,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필자는 필자 자신의 본질을 이미 안다. 성격도, 생김새도, 속내도 변함 없이 그대로일 것을 안다. 바라는 소망도, 동경하는 꿈도, 기다리는 미래도 변치 않고 똑같을 것을 안다. 중요한 건 밖에 있지 않다. 어떤 이유도 겉에는 있지 않다. 속에, 깊은 저 속에 감추듯이 간직한 비밀스러운 것, 세상 만사 마음 먹기 달렸다는 결론에 있음을 진즉에 안다.
좀 더 행복하기 위해서, 모든 세상과의 관계에서 하나로 통하는 진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함으로 자신이 더욱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아주 당연한 진리를 알면서도 구태여 숨기려 들지 말고, 애써 드러내는 삶을 살아주기를 스스로에게 당부하면서, 이제까지 정말 많이 모자랐었음을, 기본보다도 훨씬 덜 채워졌었음을 필자는 이제 또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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