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삼화사 노사나불 배각명문의 역사

강명옥 | 기사입력 2025/11/01 [07:29]

[칼럼] 삼화사 노사나불 배각명문의 역사

강명옥 | 입력 : 2025/11/01 [07:29]

▲ 소설가 박현식 / 토지문학회장 / 문학평론가 / 산업공학박사     ©강원경제신문

 

 

 

 

 

 

 

 

 

 

 

 

 

 

삼화사 노사나불 배각명문(排却銘文)의 역사

박현식(소설가 / 산업공학박사 / 강원경제신문)

 

지난 9월 30일 목요일 10시 30분에 횡성의 이중연님과 동해삼화사를 방문하였다. 방문에서 1996년 노사나불이 복원이전 모셨던 전각에서 처음 배면에 글씨가 있음을 찾았던 전상욱 대산하우대표(당시 삼화사신도회 청년회장)의 생생한 고증을 들었다.

 

삼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情寺)의 말사로 642년 (신라선덕여왕11년) 자장율사가 처음 터를 잡고 '흑련대'라 하였으며 864년 범일국사가 '삼공암'이라 하였다. 삼공암은 고려 태조인 왕건의 원찰이었는데, 왕건은 이곳 부처님 앞에서 후삼국의 통일을 간절히 염원했고 결국 고려건국 20년 만에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삼국에 얽힌 갈등 구조와 증오의 감정을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 내고자 삼공암을 '삼화사(三和寺)'라고 사명(寺名)을 바꾸었다. 이러한 왕실과의 인연은 조선시대로까지 이어져 최초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가 실행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삼화사는 사면이 모두 산인데, 서쪽 봉우리는 봉이 춤추고 학이 서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고 남쪽 기슭은 용이 어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형세를 하고 있다. 그곳은 기이하고 절묘함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그 북쪽에 두타산이 있는데, 웅장하고 위엄 있는 기세가 오대산과 더불어 표리를 이루고 있으며, 무릉계곡이라는 시내가 있는데 이 또한 천고의 뛰어난 경치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수령과 목백들이 바위나 반석에 이름을 쓰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마치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모여든 것과 같았고 시인과 묵객들도 모두 계곡 아래에서 시를 지어 잠깐 사이에 하나의 사원을 열었다. 삼화사의 건립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공존하고 있다. 즉, 삼화사 사적에 근거한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율사 창건설, 강원도지에 근거한 통일신라 흥덕왕 4년(829) 창건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근거한 범일국사 창건설(864)이 그것이다. 첫째 설화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불교신앙을 통하여 강력한 국가정신을 수립하고자 하였으며, 이 같은 계획의 하나로 당나라에 유학 중인 자장율사를 불러들여 경주에 황룡사 9층탑을 건립하고, 지방에는 오대산을 중심으로 불교 성역화를 추진했다. 삼화사는 선덕여왕이 오대산 성역화를 추진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창건되었다는 설이다. 결국 삼화사는 국가정신의 수립이라고 하는 호국사찰의 성격을 띠고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설화로는, 강원도지에 근거한 통일신라 흥덕왕 4년(829) 창건되었다는 것으로, 삼화사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삼화사는 신라 하대에 교종 사찰에서 선종사찰로 전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셋째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근거하여 범일국사가 신라 말에 삼화사를 창건하였다는 것으로, 삼화사가 9산 선문 가운데 사굴산문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찬건되어 흥덕왕 때에 교종에서 선종으로 전환하고 신라 말 범일국사에 의해 9산 선문 가운데 사굴산문으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직지는 1377년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본래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직지심체요절'은 "부처님의 말씀 중 가장 중요한 직지에 대한 뜻풀이를 고승들의 어록에서 가려 뽑아 모은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직지심경'은 불경을 뜻하는 '경'이 포함되어 불경이 아닌 직지를 불경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 불경이 아닌 선종의 진리를 담은 서적으로,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 배각명문(排却銘文)은 9세기 중엽에 제작된 시주문 161자 이두문 형태로 새겨져 있어 직지심경보다 4세기 앞서 만들어진 귀중한 금속활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따라서 삼화사 철불의 배면에 남겨진 글씨는 인류 인쇄문화의 기원을 새롭게 쓰게 할 귀중한 사료다.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인쇄 증거로 평가될 수 있으며, 한국 불교와 세계 문화사 모두에 큰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와 학계가 협력하여 이 유물을 체계적으로 조사·보존해야 할 시점이다. 

▲ 동해삼화사 배각명문     ©강원경제신문

         

▲ 전상욱 대산하우징 대표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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