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림삼의 초대시 **
그림자 2 -
뭉게구름 멀리로 흐르다가 기인 여정 버거워서 머물러 쉬다가는 산허리 거기 이미 자네는 구름보다도 한발 앞서 와 뱃가죽 까놓고 놀고 있더라
바람 쉬지 않고 불어가다 뛰는 가슴 숨가빠 멈칫 호흡 죽인 봉우리 거기 이미 자네는 바람보다도 먼저 도달해 긴댓자 드러누워 쉬고 있더라
하여,
여울 물살 힘모두어 너울로 번득이며 잠수해 깊어진 바다속 거기 그럼에도 자네는 물결보다도 진즉 달려와 숨죽여 눈치 보며 웃고 있더라
열쇠 구멍으로 세상 내어다보며 그게 세상의 다인 줄 여기던 그 때 그 시절부터 자네는 이미 나보다 훨씬 앞서서 저만치 세상 밖을 내달아 떠나갔고-
십여년 쯤 전, 잎 떨어진 봄꽃 두어송이 들고 일 없이 찾았던 양지바른 친구 무덤, 아련한 추억으로 성묘 한번 선심 쓰려 삶에 찌든 추레함으로 스며든 내게 나보다 먼저 당도한 자네는 말은 없이 그저 싱긋 해 저문 노을인 양 웃음보내고 섰구나
그 큰 눈안에 눈물은 머금은 채... 정작 슬픈 건 난데 자네는 왜 우나?
시의 창 -
혹한의 달 2월이 열렸다.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고개 돌리던 게 수삼일 전이라 여겨지거늘, 하마 겨울의 한 가운데로 접어들었음이다. 대낮으로도 영하의 기온이 이어지지만 바투 봄을 재촉하는 듯도 느껴져 세월의 빠름을, 계절의 무상함을 아삼삼하니 맛보는 이즈막이다. 이제 원치 않더라도 부지런히 몇날 몇밤을 내닫다보면 정작 봄 기운에 휘파람 불 날도 그다지 멀지는 않았을 거라 여겨지니, 새삼 호승심이 북돋아 겉옷 제친다.
밥은 원래 인간이 먹기 위해 지은 것이다. 따라서 밥은 밥그릇에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밥이 모셔져야 할 마땅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밥이 개 밥그릇에 담기면, 그건 더럽고 초라한 개 밥이 되고 만다. 밥알이 사람의 얼굴이나 옷에 붙어 있어도 그만 추하게 느껴진다. 이미 밥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제 있을 자리가 다 정해져 있다. 간장 종지에 설렁탕을 담지 않고, 설렁탕 뚝배기에 간장을 담지 않는다. 버섯이 아무리 고와도 화분에 기르지 않는다. 인간도 자기 인생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인간이라면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제대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힘겨울 때는 한 숨 쉬었다 가면 된다. ‘정호승’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 중에서 나오는 말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틔우며,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 속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대관절 얼어붙은 2월을 탓하며 엉절거릴 짬 따위가 어디 있는가?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자. 인생 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오기 마련이다. 꿈과 희망이 있기에 내일이 아닌 그 훗날이 있지 않을까? 어제는 어제대로 좋았고, 오늘은 내일을 기대 기약할 수 있기에 더 좋은 것을, 내일을 위해 오늘 하루 즐겁게, 활기차게,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보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할 때다.
“相好不如身好(얼굴 좋은 것이 몸 건강한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몸 건강한 것이 마음 착한 것만 못하고) 心好不如德好(마음이 착한 것이 덕성이 훌륭한 것만 못하다)” 이 글은 중국 당나라의 ‘마의선인’이 쓴 ‘마의상서(일종의 관상학)’에 나오는 유명한 내용이다.
마의선인이 하루는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나무를 하러 가는 머슴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래서 마의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서 죽을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 머슴은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을 할 때, 산 계곡물에 떠내려오는 나무껍질 속에서 수많은 개미 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보였다.
그 머슴은 자신의 신세와 같은 개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 떼들을 모두 살려주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그 머슴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마의선인은 그 젊은 머슴이 개미를 구해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남긴 말이, 바로 위의 글귀다.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 위대한 일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돌아볼 수 있는 모든 성공자들이 걸어온 길은, 한 때의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쉬운 일의 반복이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마음은 □ 모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네모난 모서리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자라면서 모서리는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깎여지고 다듬어지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서리는 깎여버리고, □가 O이 되어야 철이 들었다고 말하게 된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둥근 마음.... 그러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둥근 마음은 변한다. 어떤 때는 부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토라져 삐지기도 하고, 그래서 사랑을 하면 둥근 마음은 ♡ 모양이 된다. 그렇지만 ♡도 하나의 모서리를 가지고 있다. 그 모서리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도 한단다.
그렇지만 ♡를 자세히 보자. 뾰족한 부분이 있는 반면, 움푹 들어간 부분도 있다. 그렇다. 사랑은 움푹 들어간 부분으로 뾰족한 부분을 감싸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 모양이란다. 사랑이 왜 ♡ 모양인지를 이해했으니, 너, 나가 아닌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할 거다. 지구가 둥글고 태양이 둥글고 달이 둥근 이유를 아는가? 바로 우리의 삶을 둥글게 살라는 무언의 표상이라고 한다.
둥글게 일하자. 모나게 일하면 다치는 사람이 많아진다. 둥글게 즐기자. 모나게 즐기면 끝에 가서 꼭 싸우게 된다. 둥글게 말을 하자. 모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둥근 사람은 친구가 찾아오고, 볼수록 넉넉하다. 아무리 모난 마음으로 왔다가도 둥근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그만 녹아버리고, 아무리 큰 문제를 안고 와도 둥근 사람 앞에서는 작아지고 만다.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이 겨울, 춥기만 한 2월인가? 아니면 둥근 2월인가? 내 마음 먹기 따라 달리 보여지고 달리 느껴지는 이 한 달, 우리에게 그림자로 따라붙는 우리의 얼굴들이 환한 웃음으로, 행복한 느낌으로 충만해지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이 정도 겨울이야 너끈하게 정복하고 사랑하면서 살아내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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