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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무산대종사 영결식 거행
30일 설악산 신흥사 영결식에 이어 건봉사에서 다비식 거행
 
이유찬 기자 기사입력  2018/05/30 [14:17]
▲지난 26일 오후 5시 원적에 든 설악산 무산대종사의 영결식이 30일 설악산 신흥사 설법전에서 거행된 가운데 신흥사 주지 법검 우송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브레이크뉴스강원 이유찬 기자



[브레이크뉴스강원] 이유찬 기자 = 지난 26일 오후 5시 원적에 든 설악산 무산대종사의 영결식이 30일 설악산 신흥사(주지 법검 우송스님) 설법전에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을 비롯한 종정 진제법원 대종사,총무원장 설정스님, 중앙종회의장 원행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 본사주지협의회 회장 성우스님, 중앙신도회 이기흥 회장과 종단 및 신도 대표와 불자와 시민 등 3000여명이 자리했다.

 

▲ 설악산 무산대종사의 영결식이 30일 설악산 신흥사 설법전에서 거행된 가운데 종단대표와 각계대표 및 신도대표들의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브레이크뉴스강원 이유찬 기자

 

설악산 무산대종사 스님의 속명은 조오현, 법호는 설악당,법명은 무산으로 1932년 경남밀양에서 출생, 1957년 경남밀양 성천사 인월 화상으로부터 사미계를 수지하셨다.


1968년 범어사 석암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신 뒤 1960년부터 경남밀양 금오산 토굴에서 6년간 용맹정진 하셨다.


1975년 설악산 신흥사에서 정호당 성준 화상을 법사로 입실, 건당 하신뒤 구 법맥을 이어 1977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주지로 취임하셨다.


1981년에는 국제 포교사로 도미하여 가두에서 3년간 선 수행과 설법으로 전법활동에 매진했으며 이어 1989년 양양 낙산사에서 주석하시며 정진 중 불조대의를 투득하시고 오도송 '파도'를 지으셨다.


1992년 신흥사 회주가 되신 뒤 설악산문 재건을 시작해 1998년 백담사 경내에 무문관인 '무금선원'을 개원하셨다.

 


2000년 신흥사에 '향성선원'을 개원한뒤 도의선사가 창건한 조계종 종찰 남설악 진전사를 복원하시고 선풍 진작에 진력하셨다.


2002년 백담사에 조계종 '기본선원'을 개원하신후 201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 조실로 추대되셨다.


2014년부터 백담사 무문관에 입실 하신 뒤 원적하기 까지 4년간 동하안거를 폐관정진하셨다.


2014년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로 추대되신후 2015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피선 됐으며 대종사 법계를 수계하셨다.


2016년 '조계선풍시원도량설악산문'을 현판하시고 산문재건을 내외에 선포하신 무산대종사는 지난 2018년 세연을 마치시고 5월 26일 오후 5시 원적에 드셨다.


무산대종사는 원적에 드시기전 "천방지축 기고만장 호장성세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이라는 열반송을 남기셨다.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수봉 세민 스님은 영결사에서 "지난밤 설악산이 소리 없이 우는 것을 들었다.계곡물도 울먹이고 지나갔고 새들도 길을 잃고 슬픔을 참지 못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삼라만상이 무릎을 꿇고 슬퍼하는 것은 이 산중의 주인을 잃었기 때문이다"며 여기 모인 대중은 평소 소탈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이끌어 주시던 그 법음을 뵙고 들을 수 없어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한편 신흥사에서 영결식을 마친 운구는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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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30 [14:17]  최종편집: ⓒ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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