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2011)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09/13 [20:12]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2011)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09/13 [20:12]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2011)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2011)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돌아보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독서를 대중적인 활동으로 만든 지난 5세기 동안 선형적문학적 사고는 예술, 과학 그리고 사회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예리하고 유연한 이 같은 방식의 사고는 르네상스를 불러온 상상력이었고, 계몽주의를 낳은 이성적 사고였으며, 산업혁명을 이끈 창조적 사고였습니다. 모더니즘을 낳은 전복적인 사고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곧 구식이 될 것입니다(27). 책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인쇄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생각의 지평을 확대하였습니다. 소수의 엘리트층과 수도사들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싼 가격으로 대량 보급되면서 보편적 지식은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생각하는 방식에 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구술에 의존했던 사고체계가 문자에 의한 사고체계로 변한 것입니다. 지적 기술이 변화하면 인간의 사고체계도 변한다는 함의입니다.

 

지금 인류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위에서 파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문명의 중심축에 자리 잡고 있던 인쇄기술의 퇴장과 디지털 기술의 등장이 그것입니다. 오늘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몸과 정신과 일체가 된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미디어는 단순한 정보의 유통 수단이 아닙니다. 미디어는 생각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생각의 과정도 형성합니다(21).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인류의 생각을 바꾸었듯이 미디어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미디어 방식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은 뇌 활동의 산물입니다. 우리의 뇌는 이미 미디어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간의 두개골 안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존재하는데, 이 뉴런들은 1밀리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에서부터 몇 피트에 이르는 것까지 그 길이와 모양이 다양합니다(41). 이 신경세포인 뉴런을 결합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을 시냅스라고 합니다. 이 결합으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인격이 만들어집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영(J. Z. Young)''인간의 뇌 세포는 사용할수록 말 그대로 더 커지고 발전하며, 사용하지 않으면 줄어들거나 사라져버린다(42)''고 합니다. 우리의 뇌 세포가 변화를 거듭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책 읽기는 줄고, 미디어 사용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뇌 세포가 변화하는 양상입니다.

 

우리의 모든 뇌 회로는 감각, 시각, 청각, 동작, 사고, 학습, 인식 또는 기억 등 어느 것에 관여하든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널리 인정받던 지식도 언젠가는 버림받게 됩니다. 뉴런은 언제나 낡은 것들과 연결을 끊고 새로운 것을 취하며, 항상 새로운 신경세포가 만들어집니다.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50). 우리의 뇌는 경험과 행동에 반응해 끊임없이 변하고 개별 감각의 입력, 동작, 연관성, 보상 신호, 행동 계획, 인식의 변화 등에 따라 회로를 재조직 합니다(56). 디지털 문명 시대에 우리의 뇌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재정비된다는 것은, 우리의 뇌가 문자 인식에서 디지털 인식체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함의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은 시계 제작 기술 발전을 반영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시계는 우리가 중세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또 계몽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시계의 체계적인 움직임은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인간의 탄생을 도왔습니다. 기술은 혁명적 사고방식을 만듭니다. 기술은 인간이 필요해서 고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술은 인간 의지의 표현입니다. 인간은 도구를 통해 힘을 키우고 자연, 시간, 거리는 물론 타인 등 주변 환경을 통제하기를 원합니다(73). 인류는 진화를 통해 그것을 터득했습니다. 인간의 기술에 대한 선호는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지적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적 기술은 보편적으로 사용될 경우 새로운 사고의 방식을 만들어내거나 소수의 엘리트 그룹에만 국한되어 있던 사고방식을 대중에게 확산시킵니다. 달리 말해, 모든 지적 기술은 지적윤리, 인간의 사고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구현합니다(75).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발전하게 되면,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그것에 적응하여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지적 기술의 대표적인 산물이 책입니다. 지금 책 읽기와 책 쓰기의 기술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는 디지털입니다.

 

책과 관련한 기술의 진보는 읽기와 쓰기에 대한 경험도 바꾸어놓았습니다. 사회적인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조용하게 책을 읽는 행동을 둘러싸고 미묘하지만, 눈에 띄는 방식으로 더 큰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103). 인터넷은 읽기와 쓰기를 종이에서 스크린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제 그 주류가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새로운 통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자 혁명은 데스크톱, 노트북, 휴대용 기기 등 컴퓨터가 우리의 지속적인 동반자가 되고 인터넷이 글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보를 저장, 처리하고 공유하는 수단이 되면서 정점에 달하고 있습니다(117). 스크린의 세계는 우리가 이미 이해한 대로 책장의 세계와는 아주 다른 곳입니다. 새로운 지적 윤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의 통로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길을 찾고 있습니다(118). 그 길은 디지털 통로입니다. 활자가 디지털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감지한 뇌는 이미 그것과 친밀한 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넷 사용의 증가와 함께 인쇄된 출판물을 읽는 데 투자하는 시간 역시 줄어들고 있는데, 특히 신문과 잡지를 읽는 시간이 줄고 있으며 책 읽는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134). 우리는 이미 지하철과 버스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무실에 배달된 신문도 회의 탁자 구석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있다가 퇴근 무렵에 쓰레기 함으로 사라집니다.

 

디지털 방식의 생산과 유통은 거의 언제나 예전 방식보다 경제적인 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에, 즉 전자 생산물을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전송하는 비용은 물리적인 물건을 제조하고 창고를 거쳐 배에 실어 점포로 배송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기에, 이 같은 변화는 자본주의의 거부할 수 없는 논리에 따라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 중입니다(135). 효율성은 매력적인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광속으로 쏘아지는 디지털 파일속에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136). 우리는 이미 도래한 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초연결, 초융합, 지능화를 키워드로 하는 디지털 세상입니다.

 

도서관의 모습은 미디어의 새로운 지형도에 대한 강열한 상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도서관의 중심에 인터넷과 연결된 모니터들이 놓여 있고, 인쇄물의 영역은 구석으로 밀려난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149). 지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풍경은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도서관은 종이책을 보관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디지털 도서를 보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어디서든 도서관에 연결하여 디지털 자료를 열람할 수가 있고,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소지할 수도 있습니다.

 

수년 동안 전자책에 대한 다소 과장된 반응이 존재해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도 책이 디지털 미디어 혁명에서 빗겨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151). 종이책이 전자 기기로 옮겨져 인터넷과 연결될 때 이는 웹사이트와 같은 존재로 변합니다. 단어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산만함으로 포장됩니다. 링크 등 디지털 기능들은 독자들을 이곳저곳으로 몰고 갑니다(157). 전자책 읽기의 방식은 종이책 읽기의 방식과 다른 방식입니다. 종이책이 선형적 읽기라면, 전자책은 스크린 위를 이곳저곳 서핑하는 곳입니다.

 

읽기 방식의 변화는 독자의 새로운 습성과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저자와 출판사가 이에 적응하면서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도 가져올 것입니다(158). 컴퓨터가 일반화 되면서 예전에 원고지에 쓰던 글쓰기가 워드프로세스로 대체되었듯이, 이제 독서의 형태가 다시 개인적인 성격의 종이에서 대화가 가능한 스크린으로 옮겨짐에 따라 작가들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글쓰기 방식에 적응해야 할 것입니다(162). 사람들이 읽고 쓰는 방식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바뀌었고, 이 변화는 글이 인쇄된 종이에서 빠져나와 컴퓨터의 방해 기술의 생태계 속에 장착되는 양상은 더디기는 하지만 분명 계속될 것입니다(164). 아니 그 속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고 순식간에 덮쳐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둔감하여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학자인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하퍼스(Harper's)>에 쓴 글에서 사람들은 눈을 감고 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필수품이라고 불릴 작은 오디오 플레이어를 지니고 다닐 것이라 예측한 것으로서 이 플레이어는 그들이 지닌 모든 책과 신문 그리고 잡지를 담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165). 벨라미가 예견했던 일은 이제 새롭거나 놀라울 것이 없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리딩북이나 영상북이 소셜미디어와 연결되어 어디서나 눈을 감고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스마트폰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뉴미디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책은 여전히 흔히 존재하고 있고, 인쇄된 작품이 향후 몇 년 동안 상당한 규모로 계속 생산되고 읽힐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합니다. 물리적인 책이 소멸의 길에 있다 할지라도 그 길은 확실히 길고 구비구비 굴곡이 있는 길임이 분명합니다(167). 우리는 여전히 익숙한 책 읽기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학자인 클레이 셜키(Clay Shirky)2008년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깊이 읽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깊이 읽기가 늘 과대평가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에 대하여 ''너무 길고 그리 흥미롭지도 않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이 우리에게 허용하는 풍부한 접근성 덕분에 마침내 이 피곤한 습관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168). 이러한 셜키의 주장은 지나친 감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셜키의 주장은 지적 성과물에 대한 사회의 태도를 두고 벌어지는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169). 톨스토이 작품뿐만 아니라 인류 거장들의 고전의 가치가 지금 시대라고 소멸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전자책에 익숙한 독자들이 그러한 책을 읽을 것인가? 대중의 독자가 읽지 않는다면 소수의 애호가나 문학연구가의 서재에서나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책읽기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책의 윤리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홀로 고독하게 몰입하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온라인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는 겉핥기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한 생각, 그리고 피상적인 학습을 종용하는 환경 속으로 입장하는 셈입니다(174). 읽기가 책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몰입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사고방식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은 바로 인터넷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긴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말 것이라는 점입니다(177). 이것은 불행하게도 인간의 창조적인 생각을 제한하는 것과 연결되는 문제입니다. 인터넷이 주는 자극의 불협화음은 의식적, 무의식적 사고 모두에 합선을 일으켜 깊고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합니다. 뇌는 단순한 신호를 처리하는 단위들로 바뀌고, 정보를 잠시 의식 속으로 안내했다가 다시 내보냅니다(179).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입니다. 인간은 그곳에 그물을 던져 이미 있는 지식을 낚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면서 사용하는데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엔 창조적인 지식은 없을 것입니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뉴런과 시냅스를 더욱 긴급한 다른 업무 수행을 위해 재활용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시각을 얻지만 오래된 것을 잃어버릴 것입니다(180). 책과 인터넷의 읽기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한 결과, 책을 읽는 이들은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는 웹 페이지를 보고 검색할 때 이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를 나타냈습니다(182). 이 실험 결과 인터넷 책읽기에서는 깊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때 형성되는, 풍요로운 정신적 연계 능력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183). 인터넷 책읽기에서는 인간의 깊은 창조적 성찰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의 작업 기억으로 흘러드는 정보를 ''인지 부하(cognitive load)라고 부릅니다. 이 부하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우리 사고의 능력을 초월할 때, 즉 골무에서 물이 넘쳐흐를 때 우리는 이 정보를 간직하거나 이미 장기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와의 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이 새로운 정보를 스키마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187). 인터넷은 유입되는 정보가 너무 많아 뇌는 그것을 다 정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인지 과부화가 발생합니다.

 

인지 과부화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관련 없는 문제의 해결''주의력 분산'입니다(188). 이는 다른 종류의 미디어를 동시에 펼쳐 보일 수 있는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쉽게 짤 수 있는 데 따른 결과입니다(196). 단 두 가지 일 사이에서의 전환도 인지 과부화를 상당 부분 가중시키고 사고에 훼방을 놓으며, 중요한 정보를 간과하거나 잘못 이해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198). 지금 우리의 뇌는 인지 과부하에 걸려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메일을 확인하고 댓글을 처리하면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뇌는 쉴 틈이 없습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잡스런 정보를 처리하느라.

 

우리가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집중과 몰입 그리고 관심의 분화와 생각의 분산이라는 손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200). 우리 뇌의 가소성을 고려해볼 때 온라인상에서의 우리의 습관은 오프라인에서도 뇌의 시냅스 작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흝어보고, 건너뛰고, 멀티태스킹을 하는 데 사용되는 신경 회로는 확장되고 강해지는 반면, 깊고 지속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읽고 사고하는 데 사용되는 부분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211).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우리의 사고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풍부하고 색다른 관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바로 그 능력 말입니다(213). 우리가 컴퓨터에 의존하면 할수록, 결국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지능이라는 저자의 충고를 경청하고 숙고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에 의지한다는 것은, 인공지능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 뇌의 이면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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