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2016)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10/14 [21:43]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2016)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10/14 [21:43]

▲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2016)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2016) / 차용국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지만,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조류학, 인류학, 언어학 등으로 학문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의 글과 저작들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러한 폭넓은 지식 기반에서 우러나오는 넓이와 깊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사고는 다학제적이며 통섭적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성찰의 산물입니다. 그는 13,000년간의 인류 역사를 탐색해 나갑니다. 이 책은 그 기록입니다.

  

저자의 관심은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 책의 핵심 주제입니다. 저자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리 환경은 분명히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데, 문제는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과연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도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16쪽)입니다.

  

인류의 기원 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비록 일치하지는 않지만 인류 진화의 신비와 문명의 수수께끼 같은 열쇠를 다듬는 일이기에 멈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을 약 70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유인원의 한 부류가 고릴라, 침팬지, 그리고 인간으로 분기되어 진화했다(48쪽)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수백만 년 간 진행된 인류 진화의 대륙별 환경적 차이를 이 책의 주제인 현대 세계의 불평등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대륙이라는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당시 대륙의 모습은 지금의 지형과 달랐습니다. 약 8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가 각 대륙으로 널리 확산하였던 3~4만 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 본토의 가장자리는 현재 위치보다 1100km 가량 동쪽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56쪽). 수차례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멸종과 확산을 거듭한 당시 인류 문명(?)을 지금의 부와 연결시킬 증거가 충분한 것도 아니기에 가설이나 확신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주목한 시기는 13000년(B. C. 11000년) 전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최종 빙하기가 끝난 시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세계의 한편에서는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산업 사회가 발달했고, 다른 곳에서는 문맹 상태의 농경 사회가 발달했으며, 또 다른 지역에서는 석기를 가진 수렵 채집민 사회가 발전했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불균형은 현대 세계에까지 길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문자와 철기를 가진 사회들은 그런 편리하고 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기를 갖지 못한 다른 사회들을 정복하거나 멸망시켰다(16쪽)는 견해입니다. 대략 신석기 시대 이후의 인류 역사 발전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이 시기부터 인류는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습니다. 생산과 축적, 그리고 교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불평등의 기원과 발전도 이때쯤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시작 시기의 연대 기술이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인류 역사의 큰 맥락에서 보면 저자의 견해가 새롭고 낯선 것만은 아닐 듯합니다.

  

저자는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를 환경과 관련하여 인간 사회가 다양화되는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좋은 예(76쪽)라고 합니다. 폴리네시아의 여러 사회는 원래 동일한 하나의 조상 사회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각기 다른 환경으로 인해 얼마 안 되는 지표 면적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그 사회의 차이점들이 다양하게 발전했던 것입니다. 폴리네시아 내부의 그러한 문화적 차이의 범주들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 것들과 일치한다(90쪽)는 것입니다. 폴리네시아는 각기 고립된 크고 작은 섬들의 사회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의 차이에서 야기된 다양한 발전의 양상을 전 세계 인류 전체의 그것과 연계하여 탐색하는 통찰력이 의표를 찌릅니다.

  

저자는 근대사의 가장 극적인 사건을 1532년 11월 16일 페루의 카하마르카에서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의 충돌이라고 합니다. 당시 피사로의 군대는 말을 탄 62명의 병사와 106명의 보병이 전부였고, 아타우알파는 8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지휘(102쪽)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이 안 되는 전쟁에서 피사로는 대승했고, 아타우알파는 생포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피사로의 탁월한 지휘 능력이나 스페인 병사의 용감한 전투력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사로와 그의 병사들은 지친 오합지졸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을까? 결정적인 이유는 장비의 불균형과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피사로 군의 무기는 총, 쇠칼, 갑옷, 말 등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군의 무기는 청동기칼, 손도끼, 나무 곤봉, 돌 등이었습니다. 아타우알파군은 피사로 군의 총에 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습니다. 총을 쏘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세련된 갑옷을 입은 피사로군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아타우알파 병사들은 얼어붙어 싸울 의지 자체를 상실했던 것입니다. 피사로는 공포와 무지의 전장에서 승리를 거저 건져 올렸을 뿐이었습니다.

  

피사로가 성공을 거두게 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문자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 는 그러한 직접적인 요인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 요인들 덕분에 근대의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들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112쪽). 나는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면 바로 '정보'입니다. 피사로가 비록 우수한 무기인 총을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아타우알파가 총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전투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총이 비록 강력한 무기이지만 피사로가 가지고 있었던 탄환 등과 같은 전투 능력은 8만의 대군을 제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타우알파는 총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집단 공포에 휘말려 꼼짝 없이 당했던 것입니다. 정보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입니다. 정보의 중요성은 지금 시대와 미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아니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정보는 현재 나아가서는 미래의 개인과 국가의 발전의 초석이 될 것입니다. 국제 분쟁과 안보의 양상도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위협에서, 사이버, 질병, 경제 등과 같은 비전통적 위협의 확산을 억제하고 통제해야 시대이므로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특히 초연결, 초융합, 지능화를 핵심으로 질주하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기술 문명의 시대에 정보는 개인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무기일 것입니다.

  

야생 동물과 식물을 사냥하고 채집하며 살아온 현생 인류가 식량을 생산하고 목축을 시작한 시기는 대략 11000년경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시기는 대륙마다 달랐습니다.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느냐 말았느냐, 또 되었다면 그 시기는 언제였는가 하는 지리적 변동은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119쪽). 농경과 목축은 안정된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출산율 상승으로 인구 증가를 이끌었으며,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잉여 생산물을 축적하고, 그것을 다른 지역의 부족과 교환을 가능하게도 하였습니다. 한편, 잉여 생산물의 저장과 보호 및 교환을 위한 전문적인 직업군이 등장했습니다. 사회 조직은 더욱 복잡해졌고, 지도자와 군인, 필경사 등과 같은 관료층과 지식층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조세 제도가 발전했습니다.

  

한편, 농경의 발달이 빛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어두운 그림자도 동반했습니다. 대량의 기근과 가축화된 동물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 진화된 병원균입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조상 병원균에서 나온 것인데, 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되었습니다(126쪽). 인류는 유산자와 무산자로 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농업의 힘을 가진 민족과 못 가진 민족, 또는 각기 다른 시기에 농업의 힘을 갖게 된 민족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128쪽)를 이루었습니다. 그렇다고 수렵 채집을 하면서 살아가는 민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까지도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던 몇몇 민족들은 식량 생산에 부적합한 지역, 특히 사막이나 북극 지방 등에 국한 되어 살았던 덕분에 식량 생산자들에 의해 교체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172쪽). 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수렵 채집도 멈출 것입니다. 현대의 문명에 굴복하거나 병원균에 죽을 것입니다.

  

인류가 동물을 가축화 하였지만 모든 동물을 가축할 수도 없었고, 그 시기도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그 이유를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톨스토이의 소설 제목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말합니다. 원래 이 말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나게 되면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어도 그 결혼 생활은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인류의 가축화에 적용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234쪽).'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인간이 가축화하기 위한 동물의 선택의 준거입니다. 부연하면, 동물의 식성, 성장 속도, 짝짓기 습성, 성격, 겁먹는 버릇, 그리고 사회 조직의 여러 가지 특징 등 수많은 이유 중 한 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실격(258쪽)되었던 것입니다. 실격된 수많은 동물은 인간에 의해 멸종되거나 인간에 의해 보호를 받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의 선택 여부가 곧 신의 부르심이 되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식량 생산의 기원이 총기, 병원균, 쇠의 탄생에서 나타난 지리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 요소이지만, 식량 생산의 전파 과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식량 생산이 가장 신속하게 전파된 경우는 동서 축 방향입니다. 그와 반대로 식량 생산이 가장 느리게 전파되었던 것은 남북 축 방향입니다(262쪽). 역사의 수레가 유라시아 대륙을 중심 축으로 회전했다는 것은 식량 생산의 확산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발명품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280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지역에서는 문자, 기술, 무기,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체계 등, 문명의 원천을 이루는 요인들이 신속하게 전파되어 번영을 누리게 되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도태되거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 문명이 북반구의 온난 지역을 중심축으로 발전하였고, 그 영향은 현대를 거쳐 미래로 이어진다는 함의이기도 합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지리적 환경에 따른 인류 문명과 부의 불평등 문제에 관한 견해는 많은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나도 그의 가설에 호응하면서도 몇 가지의 의문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대 사회의 불평등이 대륙의 위도뿐만 아니라 같은 위도 같은 대륙 내에서도 국가 간의 심각한 불평등 실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인류학의 고전 반열에 올려놓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은 한 번 읽었다고 바로 답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고전은 시대와 독자에 따라 끊임없이 논의 되고 재해석 됩니다. 고전의 가치와 생명력이 여기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호기심과 의구심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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