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이원석, 2018) / 차용국

강명옥 | 기사입력 2020/11/23 [06:28]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이원석, 2018) / 차용국

강명옥 | 입력 : 2020/11/23 [06:28]

 

▲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이원석, 2018)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서평 쓰는 법: 독서의 완성(이원석, 2018) / 차용국

 

 오래전의 일입니다. 직장 생활에 묻혀 있던 어느 휴일 새벽, 창문을 열자 세상은 싱그럽고, 가슴은 강렬한 설렘으로 차올랐습니다. 그날이 걷기와 독서의 시작이었습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향해 걷는 길에서 불어오는 새롭고 신선한 기대감과 열정은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산길, 강길, 바닷길,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기는 자유로운 세계로 통하는 관문을 여는 일이었습니다. 걷는 것은 새로운 풍경과 느낌이 전하는 서정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했지만, 치열한 사유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서정과 사유의 두 바퀴를 연결하는 것은 독서였습니다.

  

독서는 콩나물시루에 물 붓기와 같다고 합니다. 시루에 부은 물은 아래로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이 자라는 것에 비유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간직하고 싶은 내용과 생각이 반드시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 잊히게 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책의 내용과 생각을 요약한 노트를 만들어 가끔씩 펼쳐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생각을 보완도 하고, 수정도 합니다. 처음부터 서평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의 내용과 생각을 정리한 종합지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든지 다시 읽고 생각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전히 전문적인 서평가도 아니며, 서평을 써야만 할 의무나 목적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읽은 책을 요약하고 생각을 덧붙일 뿐입니다. 이것이 나의 책읽기의 방식이며 글쓰기입니다. 나의 글쓰기는, 그것이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나만의 종합지로 불리든 요약에서 시작합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일어섭니다. 독후감과 서평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개념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몇 가지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독후감이 정서적이라면, 서평은 논리적입니다(23쪽). 둘째, 독후감이 내향적이라면, 서평은 외향적입니다. 독후감은 자신만의 고유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서평은 독자에게 서평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24쪽). 독후감이 주관적이라면, 서평은 객관적(25쪽)이라 하겠습니다. 셋째, 독후감이 일방적이라면, 서평은 관계적입니다. 독후감은 책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25쪽), 서평은 그 서평을 읽는 독자를 설득하고자 합니다. 독후감이 독자에게 치유의 경험을 제공한다면, 서평은 독자에게 통찰의 경험을 선사(26쪽)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독후감과 서평의 개념적인 차이점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구별의 실익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양자가 서로 통한다(27쪽)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후감의 감동과 깨달음은 서평의 설명과 평가와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37쪽). 독후감에서의 치유의 경험과 서평에서의 통찰의 경험은 분리 보다는 공유에 가깝습니다. 치유의 경험이 많으면 더 깊은 통찰을 할 수 있고, 더 깊은 통찰의 경험은 더 좋은 치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독서는 독자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만듭니다(30쪽). 좋은 독서와 좋은 서평은 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33쪽). 좋은 책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고 저자와 독자 간의 대화가 지속됩니다(36쪽). 고전이 세대를 뛰어 넘어 지속적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재해석의 가능성, 그로 인해 독자와 끝없이 새롭게 대화하는 책이 고전입니다. 서평은 책의 해석을 담아 보여주고 누군가에게 그 책을 읽도록 권하는 글입니다. 고전은 그동안 수많은 서평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소진되지 않는 서평거리가 있는 책입니다.

 

서평 쓰기는 심화된 독서 행위입니다. 서평 쓰기는 우리가 더욱 깊이 책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가운데 더욱 깊이 우리 내면으로 들어가게 도와줌으로써 단순한 독서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렇기에 서평 쓰기는 우리의 내면과 외면을 이어 주고 통합시키는 좋은 매개입니다. 서평 쓰기 자체가 책을 통해서, 책을 읽는 독자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44쪽). 서평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요약하고 느낌과 생각을 토대로 글을 쓰는 지성적인 행위입니다. 모든 글쓰기에는 자신의 자아에 관한 성찰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서평의 기본 재료가 다른 사람이 쓴 책이라 하더라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서평을 통해서 또 다른 독자가 그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서평가 자신의 성찰을 거치지 않고는 불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서평 쓰기의 귀결은 독서를 통해 획득한 자아와 타자에 대한 깨달음을 더 넓은 지평으로 확장하는 것입니다. 앎과 삶의 일치, 즉 인격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49쪽). 서평의 영향력은 서평을 읽는 독자뿐만 아니라 서평가 자신에게도 미친다고 하겠습니다.

  

서평의 영향력은 '서평이 왜 필요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가?'와 연계하여 검토할 사안입니다. 서평의 주된 영향력의 대상은 책에 대한 잠재 독자일 것입니다. 잠재 독자의 책에 대한 선이해 형성과 독서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책을 선택하는 동기나 방법은 개인의 관심과 취향 등에 따라 다양할 것입니다. 서평을 참고하는 것도 교양 있는 하나의 습관일 것입니다. 또한 훌륭한 독서가나 지성인은 누구나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내 마음의 도서관 혹은 인덱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여기에는 방대한 독서 못지않게 꾸준한 서평 섭렵이 필요합니다(53쪽). 이럴 때 서평은 지적 허영을 위한 도구라는 비판적 견해도 있지만, 교양인의 대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긍정적 입장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나는 서평을 읽는 동기가 지적 허영이든 대화를 위한 수단이든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이 스스로 원본을 탐구해서 얻은 것이 아닌 것처럼, 반드시 스스로 책을 다 읽었을 때에만 그 책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서평도 그 책에 관한 지식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책을 읽지만 그것 전부에 대해서 서평을 쓰는 것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서평가의 관심과 취향 및 목적에 따라 서평할 책의 선택에 차이가 있겠지만, 서평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우선 반영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서평가는 결코 밀실에서 고고하게 외치는 이가 아닙니다. 그는 광장, 그러니까 공론장에서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서평을 작성합니다. 나아가 사회 자체를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데에 서평을 활용하고자 합니다(71쪽). 소통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에 관해 자신의 관점을 주장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요약과 평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서평이지만, 평가에 비중을 두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평가는 비판을 전제로 합니다. 이 비판은 책이나 기존 평가에 흠집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이해를 위한 비판입니다. 그래서 서평에는 공감과 비판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적절한 질문을 하려면 균형 감각과 해당 주제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공부해야 합니다(81쪽). 서평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한 만큼 책을 이해할 수 있고, 공감과 비판거리가 풍부해지며, 서평의 방법과 질도 향상될 것입니다. 서평의 핵심은 '평'입니다. 이는 평가, 곧 값을 매기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비교입니다. 비교란 다른 것과 견주어 가치를 매기는 것입니다. 평가는 선택 그리고 옹호 혹은 배제입니다. 이렇게 견주고 매기려면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평가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맥락화'입니다(99쪽). 좋은 서평은 바른 맥락 속에 책을 자리매김합니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 연결해 특정한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 서평의 역할입니다(100쪽). 서평가는 특정 분야의 책이나 전문가의 서평을 읽고 지식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듯합니다.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과 관점 및 논리를 습득하고, 다른 여러 분야로 넓혀가는 것도 권장할만한 일인 듯합니다. 또한 자신의 전문 분야 또는 어느 정도의 선지식과 선이해가 있는 분야와 연결하여 서평의 실마리를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도 좋은 방식일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서평이 지향하는 곳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교양입니다.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마음속에 정원을 가꾸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서평을 쓰는 것도,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는 것도 교양의 정원에 꽃을 피우고 공감을 나누는 일입니다. 교양의 정원에서 쓰는 서평은 글쓰기의 출발이며 책읽기의 완성입니다. 이 책 부제가 ''독서의 완성''인 이유입니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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