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64)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10/19 [01:01]

바람의 제국(64)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10/19 [01:01]

▲     ©정완식

 

갈바람이 유혹하는 저 산 너머에 

썰매 타고 오는 북풍이 닿기 전에 

단풍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여행을 가자 

 

눈 밖에 난 녹음이 갈바람에 굴복하고 

헛바람 든 시인이 나들이옷으로 갈아입는 

단풍이 꿈틀대는 거기서 산책을 하자 

 

식욕 잃은 단풍잎이 뱃살을 빼고 

갈바람의 회유에 매정하게 인연을 끊는 

유혹이 넘쳐 나는 그곳으로 길을 나서자​

 

바람잡이의 허상에 싫증을 내고 

떠돌다 지쳐 

키 작은 단풍 아래 머물면 

 

더 멀리 날기를 꿈꾸는 그곳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자​

 

- 갈바람의 회유 - 

 

65. 회유 

 

연수는 아직도 잔뜩 불만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이상일 전무를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가려다 주문한 차가 나왔다는 진동벨 소리를 듣고는 카운터로 가 차를 들고 와서, 이전무와 자신의 자리에 놓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제가 제일 의문이 드는 건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그 많은 거액의 리베이트 자금이나 횡령한 돈을 전무님께서 혼자 독식해서 사익을 취한 건지, 아니면 전무님은 그냥 중간에서 시키는 대로 하시고 돈은 다른 사람이 챙겨간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이전무는 아무런 대꾸 없이 침묵하며 연수를 마치 노려보기라도 하는 듯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시면 이 부분은 전무님이 혼자 하시고, 혼자 사익을 취한 것으로 이해해도 됩니까?"​

 

연수가 이전무를 압박하며 다시 대답을 유도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난 모르는 일이라고요."​

 

이전무가 짜증을 부리듯 단호한 목소리로 연수의 말을 부정하였지만, 일단 그의 호응을 유도한 것은 성공이었다​

 

"그렇게 부정하셔도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이미 여러 사람으로부터의 진술이 있어서 전무님의 리베이트 관련 의혹은 확정적인 것으로,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 얘기는 전무님께서 혼자 다 뒤집어쓰고 가느냐, 아니면 단순한 심부름꾼 내지는 조력자에 불과하냐 하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전무님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중요한 것이, 횡령이나 배임은 형사사건으로서 회사에서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하면 형사책임을 고스란히 전무님께서 다 짊어져야 하는 건데, 전무님의 죄가 그만큼 더 무거워질 수 있다는 거니까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아니,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이전무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협박하는 게 아니고, 판단은 전무님께서 하시는 거겠지만 저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전무님께 설명하는 겁니다."​

 

연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응대하자, 이전무도 주변을 의식했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장상무가 이러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아무리 비공식적으로 날 만나러 왔다고 하지만, 휴일날 쉬는 사람을 불러내서 보자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인 상해라고 하지만, 그래도 외국인데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을 날아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장상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네요."​

 

"맞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이해가 안 되지만,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최종보고서를 최고경영층에 보고드리기 전에 이전무님을 뵙고 상황을 말씀드리고, 좀 더 정확한 사실과 진실을 파악해서 보고서에 담고 싶은 것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전무님을 찾아뵙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저도 절실한 마음이라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전무님이 잘못하신 거는 잘못하신 거고 지금 현 상황에서 전무님께서 하실 수 있는 한, 저를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아니, 나를 보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면서 나한테 무엇을 도와달라는 거요?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장상무가 나를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데..."​

 

이전무가 처음보다는 조금씩 말 수를 늘리며 연수와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나쁜 징조는 아니었다​

 

"저는 이전무님께서 저지른 비위행위가 다 이전무님 자신을 위해서 그랬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고 이전무님도 그렇고, 지금은 좀 더 솔직해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솔직해져야 한다니요?"​

 

"아시지 않습니까? 전무님이 모시고 있는 그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다 그분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이전무님 자신입니다. 

전무님이 입을 꼭 다문다고 해서, 이 일이 조용히 해결되고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난주에 전무님이 주관해서 전무님이 믿을만한 사람들과 협력업체 대표 몇 명을 모아 예청에서 대책회의를 하셨었지요?"​

 

이전무가 흠칫하더니 연수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 저희한테 제보를 해왔습니다. 이미 이전무님 주위의 사람 중에서도 저희 쪽에 협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지요.​

 

다시 말해 전무님의 비위행위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증거와 증언이 확보되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이미 자기들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입을 다물고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애국지사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비위행위고 불법행위고 다 비난받을 행동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중국사업본부에서 제일 막강한 힘을 가진 실세이고 그 실세를 가진 사람에 의해 자신들의 출세 여부가 결정될 것처럼 보이니까, 그 사람 밑에 모여들고 협조하고, 충성을 맹세한다고 말은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것들이 명분도 없고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느낄 것입니다."​

 

연수의 말을 듣고 이전무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고 연수는 판단했다​

 

"저는 전무님께도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건 제 진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무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제가 왜 주말에 여기까지 와서 전무님을 만나고 있겠습니까?​

 

그냥 현재 작성된 최종보고서 내용 그대로 보고드리고 그에 따른 최고경영층의 의견을 받아서 그대로 집행만 하면 저도 편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진실이 묻히게 되고 모든 책임은 이전무님 본인이 다 뒤집어쓸 수도 있겠지요.​

 

이전무님도 왕부회장에게 토사구팽을 당했던 성도에 있는 정호일 사장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도 제가 만나봤는데, 그분 역시도 그간의 일을 무척 후회하면서 양심선언을 하셨습니다. ​ 

이전무님도 정호일 사장처럼 그렇게 토사구팽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연수의 설득이 이어지자 이전무는 조용히 찻잔을 바라보며 침묵에 빠졌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10/19 [09:14] 수정 삭제  
  우와~장상무님 말씀을 너무 잘하신다. 멋져요!!! 즐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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