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森의 招待詩 - 서시, 트라우마

林森의 招待詩

림삼 | 기사입력 2022/06/18 [07:53]

林森의 招待詩 - 서시, 트라우마

林森의 招待詩

림삼 | 입력 : 2022/06/18 [07:53]

  © 림삼

** 林森招待詩 **

 

서시, 트라우마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바람에 스치운 별빛을 따라

밤은 깊게 글썽이고

 

귀 기울이면

산고의 고통 시달리다

냉랭하니 돌아앉아

세월의 입 막는 휘파람소리

 

죽어가는 모두를 사랑한 윤동주와

살아가는 모두를 사랑한 내가

마주앉지 못한 아픔이

못내 아프기만 해서

숨죽여 신열 앓더니

 

새벽 슬몃 다가선 어귀엔

눈물빛 무서리에 실린

트라우마의 천형

버석이며 선잠을 깨운다

 

정작 밤새는 슬퍼서 울진 않아

밤새는 아파서 울거든,

세월에, 짧은 송곳세월에

철철 찔리운 염통 받쳐들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그 하늘을 우러러

 

- ()의 창() -

 

산다는 건 무엇인가? 죽는다는 건 또 무언가? 태초부터 시작되어진 생명체, 그리고 역사를 거슬러 탄생한 인류의 기원, 영원까지 이어질 장엄한 행진, 그 거룩한 삶! 이렇게 멋지게 서두를 펼치니 마치 인간의 삶이 엄청나게 거대하고 찬란한 불가사의인 듯하여, 저절로 숙연해지고, 문득 심각해지기까지 하는 심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니다. 산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그냥 우리에게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이며 그저 그런 일상이다. 아직 나 자신에게는 도달하지 못했을 따름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다.

 

허기사 그렇게 가볍게 결론을 내리자니 다소 억울한 면도 있기는 하다. 진리가 바로 그런 거라고 쉽게 인정하는 처사도, 돌이켜 보건대 참 서운하고 허무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적당히 엄중한 정의를 덧붙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실을 말해보자. 뭐가 달라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삶이라는 제목으로 부를진대, 실상 단순히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요는 어떻게 어떤 모양새로 그 삶의 시간들을 이어가느냐 하는 점이다. 참다운 삶이라는 것이, 옳게 살아간다는 것이, 뚜렷한 공식이나 해답이 있지는 않다. 이른바 수많은 사람들의 삶들이, 그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펼쳐진다. 성공이나 실패라는 이분법으로 삶의 질이나 수준을 평할 수도 없고, 행복과 불행만의 기준으로 삶의 가치를 정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삶이라는 건 긴 골짜기를 걷는 굴곡진 여정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웃음으로, 또 때로는 눈물로 메워갈 여백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삶의 여정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 가운데서도 의식과 무의식이 중첩되면서 자신의 삶이 색을 드러낸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사람들의 삶은, 당장 어떻게 변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삶은 신비한 것이다. 그리고 삶은 빛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가치있는 여정이다.

 

이 삶의 탑을 쌓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요인은 바로 올바른 마음을 추구하는 자세며, 그 마음 속에 싹틔워야 하는 자아의 깨달음이다. 현실이 버겁고 고달프다 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내일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근면한 노력의 자세와 긍정적인 태도도 그 안에 포함되며, 나 보다 못한 이웃을 돌아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으로 감싸주고픈 따뜻함을 속에 품는 것도 역시 지녀야 할 품성이다.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할 줄 알고, 이웃의 불행에 눈물 흘릴 줄 알며, 불의를 보고 분개할 줄 아는 측은지심이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며, 때로는 휘청거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똑바른 길로 나아가는 기개와, 당장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는 바람직한 선택의 조건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조각들의 모듬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밝은 삶의 요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는 참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이 요소들이, 들으면 누구나 공감하며 고개를 끄떡일 이 사항들이, 실제로는 실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서로서로 권면하면서 충고와 칭찬으로 이끌어주며 공동체의 삶에 깃들 밝은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그런 부류보다도 개인적인 이기주의에 물들어 자신만의 욕심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이 세상이다.

 

도덕과 법률로 사람의 인성을 완전히 구속할 수 없고, 교육과 계몽으로 사람의 본질을 완벽하게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부단한 관심과 배려가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믿음으로 꾸준히 애쓸 일이다.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손을 잡아주는 데에 게으르지 말고 힘껏 노력할 일이다. 절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심신의 투자에 마음 다해 정진할 일이다.

 

필자가 오늘 선택한 시는 영원한 서정시인 윤동주의 동상이 정겨운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동상의 뒷면에 새겨진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시를 바라보며, 너무나도 만나보고 싶은 시인이 그리워 눈물겨워 하다가,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백번 쯤 읽다가 지쳐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덮고 있다가 문득 눈 감고 떠올린 시다. 어쩌면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안의 세계를 갈구하는 어리석음과, 결국은 다다르지 못할 완성의 삶에 대한 미련이 주체가 되어 마지못해 적은 시인지도 모른다.

 

웬만해서는 보여지지 않는 희망의 숨결과, 조심스레 햇빛이 비치는데도 도대체가 춥기만 한 오늘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유발시키면서 거듭 또 하나의 좌절을 심어주려고 엄습하는 그늘과 심상이 중첩되고 있지만, 필경 어딘가는 마련되어 있을 소망의 이야기를 피나게 그리워하는 영혼의 몸부림이, 시로 적어지는 게 비단 필자 혼자만의 방황일까? 아마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며 꿈이며, 찬연하게 펼쳐보여질 내일의 소망일 것이다.

 

우리 이웃 중에는 쓸 데 없이 걱정이나 근심만을 늘어놓으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분위기를 어둡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영혼에게에서 이런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먼저, 가슴에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 해도, 곧 일어나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 사랑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외로워도, 그 마음의 사랑으로 곧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 또한 그 마음이 진실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손해를 보고 답답할 것 같아도, 그 마음의 진실로 곧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울러 누구 앞에서나 겸손한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초라하고 부족한 것 같아도, 그의 겸손이 곧 그를 높여 귀한 사람이 되게 할 테니까 말이다.

 

늘 얼굴이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가볍게 보여도, 곧 그 웃음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 그가 행복한 세상의 주인이 될 테니까 말이다. 또한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어리석게 보여도, 그 마음의 작은 기쁨들로 곧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항상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아쉽고 아깝게 보여도, 양보 받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이 더 큰 양보와 존경을 불러올 테니까 말이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속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여도, 그의 감사하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각박한 마음을 녹여줄 테니까 말이다. 또한 마음 속에 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오해 받거나 박해를 받더라도, 머지않아 진실은 밝혀지고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게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매사를 미리 미리 준비하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비록 남들처럼 즐기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모든 일이 다 되어 있어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끝으로, 고통이 영혼을 숭고하게 만드는 영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너무 괴롭고 힘들어 보여도, 이겨낸 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될 테니까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일까?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불행과 일어나지도 않을 불운을 끌어당겨서 마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인 걸로 여기거나, 걸어가야 할 숙명으로 착각하여 쓸 데 없는 걱정에 빠져있는 사람은 아닐까? 혹은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극의 주인공으로 간주하여,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행복과 기쁨을 애써 외면하면서, 찾아온 기회조차 발로 차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행여 스스로 만들어놓은 덫에 걸려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설정한 트라우마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자신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소중한 삶의 의미를 더럽히는 생각에 몰두하기를 강요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힘써 돌아볼 일이다. 신중하게 살펴볼 일이다. ! 이제는 성큼 밖으로 나서자. 그리고 고개를 들자. 그리곤 하늘을 보자. 저 높푸른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하며 살자. 우리, 그리 살아가자. 죽을 때 까지 만이라도.

 

  © 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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