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씨는 대리 3년차이다.그러니까 대리를 달기까지 5년이 걸렸고 이후에 3년이 지났으니 회사에 입사한지는 8년이다.어느덧 입사10년을 바라보고 있는 중견사원이라고나 할까? 요즘 한 회사에서 10년가까이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그만큼 한곳에 오래있지 못하는 직장문화(?)가 그 이유가 될테지만 아무튼 쉽지 않은 일이다. 라리씨가 입사10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만큼 휘하에 후배사원도 여럿 거느리고 있어야 할 판인데 후배는 커녕 그는 여전히 막내였다. 신입사원의 입사소식을 도무지 접하기가 힘이 들기 때문인 것이다.그러다가 한달 전쯤에 신입이 들어왔다.늘상 막내로서 소위말하는 쫄따구의 역할만 해오던 라리씨는 후배가 들어와 신이난다.이제 자기 밑으로 후배가 생겼으니 이 아니 좋을소냐?춤이라도 덩실덩실 춰야 될 판이다.라리씨는 그 좋음을 후배에게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었다. 일테면 이런거였다.일거리를 지시하는데 꼰대처럼 권위를 잔뜩 집어 넣는 게 아니라 좀 더 편한 생각으로 유연하게 대해준다.그래서일까?이 후배가 라리대리님한테 자꾸만 들이댄다. "대리님!커피,뜨거운거 아님 찬거? 아님 라떼?" "혹시 대리님 휴지통 비울 때 안 되었어요?" "대리님!오늘 저녁 시간 되시면 제가 밥한번 쏠께요" 모처럼 들어온 신입이 라리씨보다 한창 어린 청년사원이다.라리씨가 너무 거하게 그 좋음을 표현하고 있는건 아닐까?조금 자중하고 거리감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라리씨가 거래처를 가려고 차를 빼다가 못보던 흠집을 발견했다. "아니,이런 우라질,어떤 놈이 내 차에 기스를 내놓고 간겨?" "남의 차에 기스를 냈으면 자진납세를 해야지 그냥 내빼면 다여?어디 어떤 놈이 그랬는지 잡히기만 해봐!" 라리씨가 씩씩거리며 외근을 나간다.그리 썩 좋지 않은 기분이 하루종일을 거미줄처럼 감싸고 있었다.꿀꿀한 퇴근길에 팔팔한 신입이 뒤를 따라오며 한마디한다. "대리님!시간 되시면 저하고 데이트 어떠세요?" 순간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뭐야? 이 친구 나한테 고백하는거야?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겨?' "갑자기 뭔 데이트?" "뭐 할 말이라도 있는겨? 여기서 해 봐!"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멀쩡한 척 툭 내뱉었다. "네,대리님! 드릴 말씀이 분명히 있고요,여기서는 말고 꼭 식사대접을 하면서 말씀 드릴께요" 라리씨의 속에서는 별의별 생각들이 껍질을 깨고 하나씩 둘씩 밖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그에 따라 라리씨는 그것들을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대리님!어때요?식사는 괜찮으셨어요?" "어 아주 나이쓰했어!근디 이제 밥도 다 먹었으니 할말을 해야 할 시간이네,뭔 말인데?" 이 친구 갑자기 가방속에서 부스럭거리며 곱게 포장된 선물을 꺼내들며 한마디 한다.
"대리님!용서해주세요" "엥?이건 또 뭔 말이다냐?" "제가요,엊그제 차를 주차하다가 대리님 차에 기스를 냈어요" 차에 기스를 내놓고는 그 차가 누구 차인지 몰라 전전긍긍했는데 라리씨의 차인줄 알고 뒤늦게 사과를 드린다는 거였다.
'짜슥,그럼 요새 그렇게 애교비슷한 아양을 떨어 댄 이유가 바로 이거였던 거야? 에효,그럼 그렇지!' 라리씨가 절망했다.모처럼 부모님을 찾아뵙는 기쁜 순간을 떠 올렸었는데 그건 절대 아니었던 거였다. 반찬으로 올라온 김치국물이 유독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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