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몸으로 우리나라 행복 지수를 높인다 한국 폴리텍대학교 교수 이재복

김철우 기자 | 기사입력 2018/06/03 [21:33]

장애의 몸으로 우리나라 행복 지수를 높인다 한국 폴리텍대학교 교수 이재복

김철우 기자 | 입력 : 2018/06/03 [21:33]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난 나는 3살에 몸이 아프며 한쪽 시력을 잃었다. 내가 오른쪽 눈이 하얗게 되어있는 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아이들이 놀려서 알 수 있었다. 놀리는 소리는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라 글로라도 사용하기 싫다. 그런 이유로 아직도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가까이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내게 오동근과 한상근 친구는 우상이었다. 공부나 운동을 잘해서 늘 부러웠지만, 나는 함께 어울릴 수 없었다. 생활이 어려워 근처 도서관에서 참고서를 보고 혼자 공부해야 하는 처지였다.


▲     © 김철우 기자

 

어려서 잃은 한 쪽 시력

 

1992년경 어느 금요일, 아마 김일 선수가 레슬링 하는 날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TV 인기 프로그램은 여로와 김일, 천기덕 선수들이 나오는 레슬링 경기가 인기가 많이 있었고 특히 한·일 전 레슬링 대회는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내가 살던 곳 근처에 공수부대가 있었다. 70년대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 아이들은 공부하기 위해 노트가 필요했고,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구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산모한테 좋다는 개구리를 잡아 주면 돈을 벌 수 있었고, 구리는 현재도 고물 값으로 좋은 가격을 받지만, 당시에도 그랬다. 동네에서 가까운 공수부대에서 사격훈련 하고 나면 다음날 몰래 들어가 탄피를 캐어 엿장수에게 팔아서 공책을 사던 어느 날이었다. 형들하고 공수부대 들어가 땅속에 있는 폭탄을 캐와 껍데기를 불리 하는 도중에 폭탄이 터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때 나는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현장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이 폭발사고는 참으로 엄청난 큰 사건이었다. 11명 사망을 불러온 이 사건은 내 생에 잊을 수가 없다. 동네 친구, 동생 그리고 형, 지나가던 행인을 포함하여 11명이 사망하여 온 동네가 피 비린 네가 한 달 이상 진동을 했고, 사망자는 새까맣게 타서 누구인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부모들은 한참 지나서야 혈육을 찾을 수 있었다. 생존자는 아는 형님 한 사람뿐이지만 한 쪽 다리를 잃었다. 물론 우리 집에서도 시장에서 장사 하던 어머니와 형님이 급하게 달려와 내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바로 공수부대 철망이 없어지고 담이 생겼다. 군부대는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다시는 부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돈벌이 시작

 

어려서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특히 박재철 선생님은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상황을 잘 아시고 야간 중학교에 입학하도록 입학금 4,000원을 선생님께서 내주신 것이다. 신문을 돌리고, 우유 배달을 해서라도 야간 중학교에서 공부를 이어 나가라고 권유하셨다.

하지만 심해진 생활고로 중학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유리기술공이 되어 기술을 인정받아 17세에 당시 15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 있어 가정에 큰 도움 줄 수가 있어 너무나 행복했고 존재감을 찾은 것 같아 뛸 듯이 기뻤다.

그 후 쇠를 가공하여 새로운 것들을 만들고 싶어 선반, 밀링, 호핑, 슬롯트, 레이디얼, 전기용접, 산소 용접 등에 관심이 생겨 동력전달용 커프링 제작 업체에 입사하여 기술부 반장을 하게 되었다. 그때 부족한 공부에 대한 열의가 타올랐지만, 회사업무가 바빠 공부는 다시 미루게 되었다.

 

1986년 구미에 있는 동양전자초자()에서 스카웃트 제안이 와서 구미로 내려가게 되었다. 거기서 문춘열 공장장 님를 포함하여 전문유리기술공 12명과 회사 관계자들의 힘을 합하여 유백 글라스 블록을 2년 만에 세계최초로 개발하여 특허를 받게 되었다. 세계에 기술력을 인정받아 무척 기쁜 일이기도 했고, 또 구미에 내려와 시간적 여유가 생겨 검정고시 시험을 통해 중학교 과정에 합격할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TV 교육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공부해 합격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 아내의 힘이 컸다. 결혼 전 아내 학력은 통신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학생이었고, 나는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한 상태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저녁 시간에는 폴리텍대학교에서 기계관련 밀링, 선반, 기계조립 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여 프레스 금형 관련 회사에 입사하여 프레스 금형과 교육 담당자로 선택되어 품질관리를 맡았다. 품질관리란 참으로 어렵다. 관계자는 서로 기본적 소통이 필요하고 의사를 표현해야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에 품질이 향상된다. 누구나 자기가 만든 제품을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규칙에 어긋나면 소비자의 만족을 얻을 수 없다.

 

▲     © 김철우 기자

 

구미에서 다시 공부 시작

 

1992년 나는 금오공대 평생교육원 사회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그 해 12월에 수료하였다. 1992년은 생을 바꿔 주는 시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금오공대 평생교육원에 다니면 큰딸을 얻었고, 서울 아시안게임과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박세직 전 서울시장을 구미에서 만난 것은 영광이었다. 특히 금오공대 평생교육원 수료식에 박세직 위원장을 초청하여 덕담을 들을 수 있었고 나 역시 구미시장 상을 받아 기쁨이 두 배였다. 묵묵히 도와준 아내에게 감사에 뜻을 전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로 다짐하였다.

 

신혼생활의 어려운 시절에도 퇴근 후 큰딸 명은의 기저귀를 빨면서 아내와 행복 가득한 생활을 이어갔다. 틈틈이 책을 펼쳐 수능을 준비한 덕분에 1993년에 금오공과대학교 야간 차석으로 합격 소식을 들어 마치 꿈을 꾸는 줄 알았다.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 수업을 듣는 일상이 반복됐다. 피로가 누적되어 학우들 따라가기가 너무나 어려워 대학교를 10년 만에 졸업할 수밖에 없었지만, 많은 분이 도움을 주신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다. 특히 열전달 전공이신 박상희 교수님과 기계 자동화 시스템 전공이신 신동원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학부 졸업 교내 논문은 3D스캐닝 관련 논문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같이 공부하던 학우들이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다들 열심히 하던 학우들이라 지금은 모두 큰 기업에서 주요 직책을 맡거나 교수 및 국가 관련 연구소에 팀장으로 근무하며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2007년 금오공과대학교 석사 과정에 들어가 복합재료를 공부하기로 했다. 복합재료는 이방성 재료다. 일반사람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면 지푸라기와 흙을 말할 수 있다. 지푸라기와 흙이 결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 항공기에서 열에너지 발산 하게 되면 온도가 수 천도가 된다. 에너지는 일반적으로 불이 필요하지만, 불에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것이 복합재료다. 이것을 연구하려면 유한 요소를 잘하여야 한다. 따라서 2007년부터 한국폴리텍대학 김천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현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하도록 한 것은 역시 아내의 도움 때문이었다. 아내는 나의 삶에 좋은 조언자이며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강의

 

현재는 나의 학력은 공학박사 수료이다. 20122월에 수료하여 졸업논문을 아직 통과하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는 금오공과대학교 박사 연구원으로 있으며 하고 싶은 우주 항공 및 스마트재료 관련 복합재료를 연구하고 있다. 2007년부터 한국폴리텍대학교에서 기계공학 관련 강의할 때 등방성 재료만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방성 재료와 형상기억 합금을 설명하면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다.

201712월까지는 강동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아산캠퍼스에서 강의하였으나 장거리 운전 하는 것을 걱정하는 아내 때문에 지금은 구미시 장천 면사무소 맞춤형 복지업무에서 사회복지 도우미로 일하며 대학교 강의도 가끔 한다.

 

요즘은 사회복지사 2급 수업을 듣고, 성폭력 상담원 양성과정 교육을 받기도 한다. 나는 현재까지 계속 다양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려면 학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수업진행 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내가 가르치는 기계공학설계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며 쉽게 포기하기도 하여 학생들하고 가까워지기 위해 심리학, 윤리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기계공학을 하는 전문인들의 작은 실수가 사람의 생명과 연관되므로 될 수 있으면 정확성을 요구한다. 성수대교 붕괴와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사고가 기계공학과 아주 가깝게 관련 있으며 나아가 윤리와 도덕성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요즘은 우리 가락인 민요를 배우면서 노인 병원, 요양원 등을 찾아가 노인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큰 보람을 찾는다. 금오공대 우리소리 봉사 단체는 년 중 계획을 잡아서 실천하고 주말에 방문하고 구미지역의 우리문화 소리를 알리는 봉사 단체다. 민요 전수자 강준자 교수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 김철우 기자


 
장애인 선수로도 활동

 

2006년부터 경북 장애인 수영선수로 전국체전에 참여하여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장애 선수들은 선수들끼리 장애를 극복하고 운동으로 만날 수 있어 함께 열심히 운동하며 살아가자고 약속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을 일반적으로 지압으로 생업을 갖고 살고 있으며 전맹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보이지 않아 다치는 우려가 커 더욱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상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선수는 비장애인과 끈을 연결하여 함께 달린다. 이때 비장애인이 장애인보다 앞에 가면 실격이다.

올해 장애인 전국체전은 전북 익산에서 10월에 개최한다. 따라서 선수는 대회에 나가기 위해 기준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얼마 전 울산 문수 수영장에서 전국수영대회에 참여하였다. 나는 두 가지 종목 신청 하여 50M를 통과하였고, 100M는 통과하지 못하여 청주전국대회에 자유형 100M와 배영 100M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요금 새벽에 1시간씩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고 있다. 청주대회 통과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행복 지수를 함께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내 가정에도 더욱 열심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없으면 나 또한 없다,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들 하늘, 가람, 찬솔 모두 사랑한다. 그대들이 나를 사랑하듯이 나도 푸른 하늘처럼 넓게 사랑한다.

 


원본 기사 보기: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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