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하야’를 한다고?
앞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법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 대리인단 측의 막말은 도를 넘는 의도적 행위요 헌정 질서를 흔드는 심히 염려스러운 행태로 보인다. 흰 머리로 상징되는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연륜이나 화려한 경력을 보더라도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지고 합법적이고 논리적인 심리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지켜보던 국내외 많은 관심을 웃음거리로 만든 국격을 떨어뜨리는 추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장단을 맞추듯 일부 인사들이 뒤늦게 국회탄핵소추안 의결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때도 같은 방법 동일한 절차를 거치면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현 정부 실무부처인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이번 탄핵절차는 적법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황교안 대행마저 우병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대기업들의 뇌물 수수 혐의 등 국정농단의 미진한 수사 보강을 위한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 신청에 대해 답변을 유보하고 있어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조기 대선 정국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조직적인 이들의 행태를 보면 국민들이 더 이상 정치권 당리당략에 입맛대로 흔들리는 생각 없는 존재가 아니라 표로 일꾼을 심판하는 주인이라는 걸 또 잊었나 싶다. 초법적인 국정농단을 알면서도 방관했던 그들의 지금까지 해 온 실정들을 분명히 다 기억하고 지금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그간 얼마나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보여줬다고 대다수 국민의 여망과 동떨어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불리하다 판단이 되면 여권으로서는 정치적 득실을 따져보고 하야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겠으나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을 내릴 문제가 아닐 것이다. 특검도 박 대통령 수사 결과를 조건부 기소중지 처분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터라 지금 사퇴하면 당장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기소가 기다리고 있고 국민 여론을 외면할 수 없는 야당이 정치적 해법에 동의하기도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말이다.
모든 일에 때가 있는 법인데 헌재의 선고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 하야를 한다는 건 너무 속보이는 일인데다 결국 지금껏 자신은 잘못이 없다던 주장과 달리 박 대통령 스스로 모든 잘못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지난 겨울 내내 생업을 뒤로 하고 광장으로 나와 촛불을 밝혔던 민심도 민심이지만 또 다른 광장으로 국론을 갈라놓은 그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지금까지 국민 앞에 한 말을 상황에 따라 뒤집어 온 그의 말을 국민도 헌재도 어디까지 신뢰할지 그것 또한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헌정질서를 바로잡고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엄중한 역사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헌법재판소가 끝까지 탄핵결정 심판을 해야 한다는 여론을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조선조 세종은 법령 하나를 만들고 제도를 개선할 때도 여러 차례 중신들과 상의하고 또 시범 운영을 해보고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보고 시행함으로써 성군으로 추앙받았다. 오늘날 그런 지도자를 다시 만난다면 국가의 복이겠지만 적어도 주관적인 호불호에 따라 편을 가르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모두를 아프게 하는 편협한 정치는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나온 길이라 끝까지 가야한다면 더 할 말이 없지만 그 싸움에 멍든 백성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지혜로운 그가 흉노의 왕비로 있던 시절과 백성들이 그를 기억하는 날 동안은 평화가 지속됐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따뜻한 고국을 그리워하며 언 땅에 봄이 오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직 봄은 아니라 했던 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 그 착찹한 왕소군의 심정이 지금 정국을 바라보는 모두의 마음일 것 같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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