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과 햇빛과 햇살

[우리 말 살려쓰기] 사랑스레 쓰는 말

최종규 | 기사입력 2013/11/06 [09:02]

햇볕과 햇빛과 햇살

[우리 말 살려쓰기] 사랑스레 쓰는 말

최종규 | 입력 : 2013/11/06 [09:02]
 

  해는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내리쬡니다. 여름에는 몹시 덥다고 느끼는 해요, 겨울에는 참 춥다고 느끼는 해입니다. 그런데, 해가 여름에 덜 내리쬐면 풀도 나무도 곡식도 열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요. 해가 겨울에 더 내리쬐면 풀도 나무도 흙도 땅도 냇물도 제대로 쉬지 못해요. 해는 늘 알맞게 내리쬐면서 지구별을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철마다 조금씩 다르게 빛과 볕과 살을 나누어 주면서 지구별을 포근하게 감쌉니다.

  황인숙 님 시집 《꽃사과 꽃이 피었다》(문학세계사,2013)를 읽다가 〈나비〉라는 글에서 “노란 셀로판지 같은 햇발 한가운데”라는 대목을 봅니다. 살짝 시집을 덮습니다. ‘햇발’이라는 낱말을 입으로 굴립니다. 햇발, 햇발, 햇발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시인 한 사람이 쓴 낱말 하나 새롭게 빛나는 넋이 됩니다.

  해를 가리키는 낱말을 떠올립니다. 국어사전을 펼치고 해와 얽힌 낱말을 이모저모 살펴봅니다. ‘햇볕·햇빛·햇살·햇발·햇귀’가 있고, ‘햇무리·햇덧·해껏·해거름·해돋이’가 있습니다. ‘해껏’은 “해가 질 때까지”를 뜻하고, ‘햇귀’는 “해가 처음 솟을 때에 퍼지는 빛”을 뜻하며, ‘햇덧’은 “해가 지는 짧은 동안”을 뜻해요. 오늘날 사람들은 ‘햇발·햇귀·햇덧·해껏’ 같은 낱말은 거의 안 쓰지 싶습니다.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해거름·해돋이·햇무리’를 날마다 찬찬히 바라보거나 즐기는 일은 퍽 드물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학교에 들어 여섯 해를 다니고, 새로운 학교에서 세 해를 다닌 다음, 또 세 해를 다닐 적에, 해와 얽힌 낱말을 찬찬히 들려준 둘레 어른은 없구나 싶어요. 학교나 동네에서 어른들이 ‘햇볕·햇빛·햇살·햇발’이 저마다 어떤 뜻인가를 찬찬히 밝히셔 알려준 적 없구나 싶어요.

  국어사전을 열 가지쯤 펼치고, 또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겪으며 생각한 여러 가지를 헤아리면서, 해와 얽힌 낱말 가운데 네 가지를 새롭게 풀이해 봅니다.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볕”입니다. 햇볕을 쬐며 풀과 나무가 싱그럽게 자랍니다. 사람도 다른 목숨도 모두 햇볕을 머금을 때에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햇빛’은 “해가 비추는 빛”입니다. 햇빛이 비추기에 어둠이 지나갑니다. 햇빛이 비추면서 모든 숨결이 제 빛깔을 띠어요. 온누리에 빛깔을 입히는 ‘햇빛’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빛깔은 ‘햇빛’이 있기에 느껴요. ‘햇살’은 “해가 드리우는 빛줄기”입니다. “눈부신 햇살”이라고 해요. 날이 맑으면 햇살을 산뜻하게 느껴요. 구름 사이로 빛줄기가 드리우는 모습 본 적 있나요? 바로 그 빛줄기가 햇살이에요. 공장이나 자동차 없던 옛날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햇살을 느꼈다고 해요. 해가 볕과 빛을 지구별이 내리쬐거나 비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살’이 햇살입니다. ‘햇발’은 “곳곳으로 뻗는 햇살”입니다. ‘햇살’은 한 줄기 빛이라면, ‘햇발’은 골고루 퍼지는 햇살 무리라고 하겠지요. 곧, 해와 얽힌 낱말은 ‘햇볕·햇빛·햇살’로 크게 나누고,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로 찬찬히 가리키거나 밝힌다고 하겠어요.

  그러니까, “햇볕이 비춘다”고 말하면 잘못 말하는 셈이고, “햇빛이 내리쬔다”고 말할 적에도 잘못 말하는 셈입니다. “햇살이 눈부시다”고 해야지, “햇빛이 눈부시다”나 “햇볕이 눈부시다”라 할 수 없어요. 또한, “햇볕이 따갑다”고 해야 맞고, “햇살이 따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해를 얼마나 잘 느낄까 궁금합니다. 하루 가운데 몇 분쯤 해를 듬뿍 맞이할까 궁금합니다. 햇볕이든 햇빛이든 햇살이든, 스스로 해를 바라보면서 신나게 뛰놀아야 비로소 제대로 깨닫거나 느낄 수 있어요. 해를 바라보며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낱말뜻을 달달 외운다고 하더라도 이 낱말들을 알맞거나 올바로 쓰지 못해요.

  그리고, ‘해’를 높여 ‘해님’이라 합니다. 달을 높여 ‘달님’이라 하고, 별을 높여 ‘별님’이라 해요. ‘햇님’이 아닌 ‘해님’입니다. 사이시옷을 잘못 받쳐 쓰는 분들은 조금 더 헤아리면 돼요. 이를테면, ‘개미님’이나 ‘사마귀님’처럼 말하고 ‘개님’이나 ‘고양이님’처럼 말하지, ‘개밋님’이나 ‘사마귓님’이나 ‘갯님’이나 ‘고양잇님’처럼 말하지 않아요. 해는 해이니까 ‘해님’입니다.

  해가 갈수록 여름이 무덥다 합니다. 땡볕과 불볕은 한결 후끈후끈 달아오른다고 합니다. 가을에도 이 뜨거운 볕이 그대로 이어갈까요. 가을이면 이 뜨거운 볕이 수그러들면서 온누리에 고운 빛을 살포시 내려앉힐까요.

  가을볕은 여름볕처럼 뜨겁지 않기를 빌어요. 가을빛은 여름빛과 사뭇 다르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들한테 들려주리라 믿어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춥고 매서운 바람 몰아칠 텐데, 추우면서 매서운 날씨 이어지더라도, 겨울볕 포근히 드리우면서 사람들 보금자리에 따사로운 사랑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빌어요. 겨울에는 새삼스러운 겨울빛 퍼지면서 온누리가 하얗게 될 테지요. 그리고, 겨울이 저물며 봄이 새롭게 찾아오면 봄볕이 언 땅을 녹이고, 봄빛이 사람들 눈빛을 환하고 맑게 밝히겠지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파랗게 빛나는 하늘빛이 곱습니다. 들과 풀밭을 바라봅니다. 푸르게 빛나는 풀빛이 예쁩니다. 여름에 새로 깨어난 사마귀와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앙증맞도록 조그맣습니다. 어린 사마귀와 메뚜기와 방아깨비는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풀밭에서 노는 사마귀와 방아깨비는 온몸이 풀빛입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 풀빛이 누렇게 물들면, 온몸이 풀빛이던 사마귀와 방아깨비는 누렇게 물든 풀잎처럼, 몸빛이 달라질 테지요. 또는 흙빛처럼 흙사마귀와 흙방아깨비 빛깔이 될 테지요.

  우리 사람들은 어떤 빛깔일까요. ‘사람빛’이란, 또 사람들 ‘마음빛’과 ‘생각빛’이란,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빛’이란, 어떤 빛깔 되어 아름다운 이야기로 널리 퍼질까요. 사랑스레 말하면서 사랑이 퍼지기를 빕니다.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를 꾸립니다.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리깊은 글쓰기>, <사진책과 함께 살기>,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빛>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같은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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