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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 후 자주 들리는 커피숍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였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한 겹더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다가8시 반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마법을 부리면 하루를 재충전하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버스 안에 들어서면 자주 앉던 자리는 신기하게도 비어져 있었다. 문을 개폐하는 옆자리이다.의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고생했어. 여기에 앉아.’라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준다. 버스에 앉으면 창문을 살짝 열어 푸른 공기의 물결을 맞는다. 차가 덜컹거릴 때면공기 파도들이 덮쳐오지만 태극기 휘날리듯이 살짝 볼살을 꼬집어 볼 뿐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았다. 스르르 잠이 들면 일상 속에서 피어난 꿈의 조각들을 마음에 담아, 날개를 활짝 펼쳐 환상의 축제를 즐긴다. 커피를 마신 덕분에 곧잘 일어나 잘 내리기도 하였지만 오늘 바이어 미팅이 있어서 긴장이 풀어졌는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고 깜빡 잠이 들었다. 푸른 숲이 서서히 나타나며 초록나비가 되어 힘차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는데 가까운 숲에서 물컹 물컹해 보이는애벌레 한 마리가 꾸물꾸물 거리며 힘들게 잎 위에 기어 다니고있었다. 애벌레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날갯짓을 하여 땀을 식혀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꿈에서 본 애벌레는 나비이기 전 나의 회상일지도 모른다. 아마 애벌레였던 과거의 내가 나비가 된 미래의 나를 보고 환희의 미소 지었던 게아닐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나비처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 눈으로 흘겨 보았던 마을의 벽화들도 한 장 한 장씩 사진 속 필름에 담아 감상하였다. 마음속 벽화는 어떤 색상으로 칠해져 있으며 무슨 디자인일지 상상하였는데,주인공이 된 꿈의 나비는 아직 내 안에 없다. 퇴근 후 단골 커피숍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조그만 수첩에 글을 써보았다. ‘애벌레에서 숲의 나비가 된 내 모습은 아름다웠다. 조용히 떨어지는 어여쁜 나뭇잎보다 돋보였다. 숲의 바람이 일렁이며 속삭이듯 검은 숲속에서 내일의 밝은 태양이 뜨길 기다리는 한 소녀가 되어보려 한다.’ 글을 쓰면서 무언가가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한결 즐거워진 퇴근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묵직한 손인 듯하여 순간 남자임을 직감했다. 너무 놀라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한참을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남자가 서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서있었다. 잘 모르는 젊은 남자였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너무 무서웠다. 재빠르게 택시를 예약하던 중 그 남자가 내 바로 앞에 서있었다.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눈을 떠보니 주변이 온통 푸르른 숲으로 변해있었다. ‘여긴 꿈속이고, 미소년이 나타났으니 곧 결혼할 남자가 생긴다는 예지몽인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 맞지?” 일어나 보니카페였고, 얼음이 다 녹아져있는 아메리카노가 테이블 위에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 카페 문을 닫기 전, 재빨리 나와서 서늘해진 밤거리를 걸었다. 몽롱한 기분으로 옆을 바라보니 어둑어둑해진 축제 현장이 보였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니 고양국제꽃박람회라는 축제였다. 매년 열리는 축제지만 이번 주말에 간다면, 꽃과 나비들을 보면서 새로운 느낌이 들 것이다. 감당하지 못할 큰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까덜컥 겁이 났다. 어둠을 품어 무거워진 해가 지구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내 안의 두려움을 한 겹씩걷어내주었다. 여러 날들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장마가 찾아왔다. 자주 내리는 서늘 서늘한 빗방울은 두려움을 촉촉하게 적혀주고, 밋밋하고 허전한 마음 덩이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한가로운 토요일, 여느 때처럼 흔들의자에서 손뜨개질로 인형을 만들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안녕? 마리야.” “아니야, 너는 광활한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재능이 있어.” 소년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말해주고는 떠나갔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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