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람팡의 "왓 프라깨오 돈타오"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17]

태국 건축유산 순례- 람팡의 "왓 프라깨오 돈타오"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17]

람팡은 방콕에서 약 600킬로미터, 치앙마이에서는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중부 평원지대와 연결되는 북부의 관문으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1916년에 방콕과 연결된 철도가 설치되었으며, 핑(ping)강의 지류인 왕(Wang)강이 도시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람팡도 람푼 만큼이나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호에 소개한 하리푼차이(람푼) 왕국의 초대 통치자인 차마테위 여왕에게는 두 명의 쌍둥이 아들이 있었다. 이 중 장남이 람푼의 통치권을 어머니로부터 물려 받고, 차남이 람팡을 건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람팡 또한 람푼과 마찬가지로 7세기경에 몬(Mon)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도시이다.
 
11세기경 강력한 크메르 왕국이 팽창하면서 태국 땅의 대부분이 크메르의 지배를 받게 된다. 람팡도 형제국인 하리푼차이와 함께 크메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제후국으로 전락하였다. 13세기에 들어와서는 크메르가 쇠퇴하고 타이족이 발호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수코타이와 란나타이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1281년에 란나타이가 하리푼차이(람푼)을 정복했고, 하리푼차이왕은 아들이 통치하던 람팡으로 피신해서 14년 준비 끝에 복수전을 벌였지만, 결국 패함으로써 1296년에는 람팡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이때부터 란나타이의 일부로 편입된 람팡은 란나타이 왕국과 운명을 같이 하게 되어 16세가 중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버마의 통치를 받았고, 버마로부터 독립 이후에는 중부 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19세기 들어 람팡은 치앙마이와 함께 티크 목재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 지역에 약 4,000마리의 코끼리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세계 티크 산업은 영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은 람팡의 목재거래를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버마로부터 많은 인력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때 유입된 버마인들은 노동력의 공급은 물론 무역까지도 손을 대면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성장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그 후예들이 람팡에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람팡에서는 버마 문화의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다.
 
람팡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꼽는 것은 불교사원인‘왓 프라깨오 돈타오(Wat Phra Kaeo Don Tao)’ 이다. 이 사원은 왕 강의 북동쪽에 있는 구시가에 위치한다. 람팡의 초대 통치자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니 1300년이 넘은 사찰이다. 사원은 전체적으로 계단으로 연결되는 지상 테라스 위에 놓여 있다. 사원의 중심 건축물은 약 50미터 높이의 란나 양식 제디 탑으로서 탑의 명칭은 ‘제디 프라보롬탓(Chedi Phra Borom That)’이라고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탑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고 란나의 전통에 따라 동판을 두르고 금을 씌웠다. 사원 경내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근대에 재건축된 반면, 이 탑만이 옛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이 사원에는 눈길을 끄는 매우 화려한 건축물이 있다. 제디탑 바로 앞에 위치한 버마 스타일의 목조 누각인데 1909년 당시 람팡의 통치자가 헌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 누각은 십자형의 레이아웃을 지닌 건축물이다. 지붕은 3층 겹지붕이며, 그 중앙에는 7층 첨탑을 올렸다. 건물의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각종 신화적 존재들이 빼곡히 조각되어 있다. 버마의 화려한 건축조각 기술을 보여 주는 뛰어난 수작이다. 건물 안에 봉안된 불상 역시 버마 스타일이다.
 
이 사원은 한 때 ‘에메랄드 불상’로 알려져 있는 태국의 팔라디움(수호신)인 ‘프라깨오모라콧’을 봉안한 적이 있다. 1434년 치앙라이의 한 사원에서 발견되어, 왕명에 따라 치앙마이로 운반하던 중 불상을 실은 코끼리가 람팡에서 멈춰 섰다. 이것을 보고 어떤 징조라고 판단하여 치앙마이로의 운반을 중지하고 바로 이 사원에 봉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라깨오 모라콧’은 1468년 당시 란나왕국의 왕인 틸로카랏에 의해 치앙마이로 옮겨질 때까지 이 사원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 사원은 또 다른 ‘프라깨오’ 불상과 관련이 있다. 바로 사원의 명칭이 된 ‘프라깨오 돈타오’라는 불상인데 다음과 같은 되는 전설이 전해 내려 온다. 서기 500년경 기근이 심했을 때 경건한 여성인 ‘매 수차다’가 하늘에서 내려 온 승려에게 특이하게 생긴 수박을 공양했다. 그런데 수박 안에 녹색보석이 있었고, 인드라의 도움으로 이 보석이 불상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사원은 현재와 같은 ‘왓 프라깨오 돈타오’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관계를 불륜으로 의심한 왕이 ‘매 수차다’를 죽였고, 승려는 피신했다. 왕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벌로서 이 땅에는 다시 기근이 찾아왔다. 매 수차다의 죽음과 기근을 불러 온 이 불상은 현재 이곳에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왓 프라탓 람팡루앙’사원에 봉안되어 있다.
 
‘왓 프라깨오 돈타오’와 같은 경내에 ‘왓 수차다람(Wat Suchadaram)’이라는 사원이 있다. 이 사원은 ‘매 수차다’의 이름을 따라 지은 사원이며 프라깨오돈타오 사원의 일부로 간주된다. ‘왓 수차다람’ 역시 지상보다 높은 대지를 만들어 그 위에 세운 사원으로서 계단을 통해 올라간다. 다소 독특한 형태의 제디탑 앞으로 주 법당인 ‘위한라이캄’이 있다. 전체적으로 라오스 스타일의 건축양식인 건물은 지붕 끝 장식이 매우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전면부는 기하학적 문양과 꽃 문양이 어우러진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버마식 사자상인 친테(Chinthe)가 건물을 수호한다. 이 사원은 1804년경 치앙센에서 강제 이주해 온 장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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