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방콕의 형성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26]

태국 건축유산 순례- 방콕의 형성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26]

1782년 라마 1세가 톤부리 ‘왓아룬’사원 건너편인 짜오프라야강 동쪽을 새 도읍으로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는 외침으로부터의 방어능력이었다. 특히 가장 큰 위협요소였던 버마가 태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수도를 강의 동쪽으로 입지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강의 흐름이 북쪽에서 서쪽방향으로 내려가다 남쪽을 향해 큰 커브를 만들기 때문에 태국인들이 신성시 하는 알(소라)모양의 도시형태를 조성하기에도 좋았던 것이다. 이 지역은 한때 프랑스인들이 침략하여 요새를 만들었을 정도로 전략적으로 뛰어난 지역이었으며, 새 왕조의 수도후보지로 거론될 당시 이 일대에는 이미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버마를 의식한 서쪽은 물론이고 동쪽 방어도 도외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동쪽으로도 해자를 파고 성을 쌓았다. 당초 톤부리 왕조의 딱신 왕이 수로를 파 놓았으나(위 사진 운하A ‘끌롱 롯’), 새 도읍의 해자로 쓰기에는 너무 작았기 때문에 라마 1세는 새로운 해자를 보다 동쪽으로 파게 되는데 위 사진에서 운하 B로 표시되고 있는 ‘끌롱방람푸(Klong Bang Lampoo)’이다. 해자를 따라 성벽을 쌓고 모두 14개의 요새를 설치하였다고 하며 이중 ‘마하칸’요새와 ‘프라수멘’요새 두 개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새 왕궁 지역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은 이 때 만들어진 성 바깥으로 이주하였으며 바로 오늘날 차이나타운의 효시이다.
 
19세기 중엽 도시가 비좁아지자 방콕은 새 해자를 만들어 확대하게 되는데 위 사진에 운하C 로 표시되고 있는 ‘끌롱 파둥끄룽카셈’(Klong Phadung Krung Kasem)이다. 이때에는 별도의 성벽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한편, 1861년에는 방콕에 주재하던 외교관들이 당시 왕인 라마 4세에게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 줄 것을 청원하였다. 그 전까지는 강과 운하가 주 교통로였던 태국은 육로의 발달이 매우 원시적인 상태였는데, 라마 4세가 이들의 청원을 받아 들여 태국 최초의 기간도로를 만들었으니 바로 ‘짜런꿍路(Thanon Charoen Krung)’이다. 왕궁으로부터 시작하여, 차이나타운을 지나 오리엔탈 호텔(옛 관세청, 프랑스대사관, 포르투갈대사관) 앞을 경유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이 도로는 총 4마일의 길이로서 짜오프라야강의 흐름을 따라 조성된 것이다. 라마 4세의 아들인 라마 5세는 유럽을 다녀온 이후 유럽풍 가로와 시가를 조성하였는데 바로 ‘라차담넌路’와 ‘두싯’이다.
라마 4세에 의해 최초의 기간도로가 설치된 이후 방콕의 도로망은 급속 확대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불과 150년이 지난 오늘날 방콕이 초 현대적인 메가폴리스로 변모하는데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태국적인 것이 희생되었으니 바로 ‘물기반문화’의 상실이다. 방콕의 방(Bang)은 물가에 형성된 도시를 의미하며, 꿍텝의 꿍(Krung)도 어원상 강의 지배자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세기 후반 전 인구의 90% 정도가 수상생활을 할 정도로 물기반사회였던 방콕은 육로의 발전으로 수로중심의 생활양식이 현저히 약화되고 만다. 오늘날의 강과 수로는 방콕시민들의 삶 자체가 아닌 과거의 유산으로서 관광상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어찌되었건 1782년 서쪽으로 짜오프라야강을 의지하고 동쪽으로 해자를 만들어 알 모양의 인공섬 안에 왕궁을 세워 방콕시대를 열었던 라마1세의 혜안은 메가폴리스로 변모한 방콕의 현재모습을 볼 때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짜오프라야강이 S자의 형태로 굽이치는 곳에 위치한 왕궁의 입지는 마치 태풍의 눈 모양처럼 생겨 길지(吉地)로서의 풍모가 느껴진다.
 
1782년 첫 공사를 시작한 이래, 증측과 개보수를 거듭하여 태국 예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는 왕궁은 태국의 문화, 정치, 종교의 상징적 중심지이다. 이 같은 중심성은 내, 외국인을 막론하고 연간 수 백만명의 순례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왕궁으로부터 북쪽으로 길하나 건너편에는 우주의 축인 락므엉(도시의 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왕궁과 락므엉이 위치한 이 지역은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 되는 것이다.
 
방콕은 짜오프라야강의 하구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이 없는 평평한 지형적 특성을 갖는다. 북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던 아유타야 왕국도 짜오프라야강이 흐르는 저지대로서 역시 산이 없는 지역이다. 아유타야 도성 밖 북서쪽 평야지대에 버마식 기단위에 아유타야식 제디탑을 올린 대형 탑이 있다. 이탑을 ‘푸카오통(골든마운틴, 황금산)’이라고 하며 산이 없던 그 지역에 산으로서의 상징성이 부여된 탑이었다. 아유타야와 마찬가지로 산이 없는 평지로 이루어진 방콕에서도 라마 3세에 의해 산으로서의 상징적 역할을 하는 ‘푸카오통’의 건립이 태국 최대규모의 탑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라마 5세 때의 재건축과 1957년도의 콘크리트 보강을 통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같이 왕도에 인공산을 짓는 배경은 우리나라의 풍수사상과도 맥락이 닿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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