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쓰기 지도와 나침반

차용국 | 기사입력 2021/03/23 [04:40]

수필쓰기 지도와 나침반

차용국 | 입력 : 2021/03/23 [04:40]

 

▲ 수필쓰기 핵심 표지

 

수필쓰기 지도와 나침반

 임병식 <수필쓰기 핵심> 경험담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1. 글은 감동을 전하는 것 

임병식 수필가는 1989년 수필을 쓰기 시작하여 1,200여 편의 작품을 썼고, 9권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그가 30년 넘는 필력과 경험을 우려내어 이 책 <수필쓰기 핵심>을 펴냈다. 이론 보다 경험에 중점을 둔 책이다. 원로 수필가가 들려주는 솔직한 경험담으로, 수필쓰기의 귀한 지도와 나침반이다. 그는 '글은 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감동을 전하는 글은 어떻게 쓸까?

 

수필이란 말은 중국 남송 때 홍매(1123~1282)가 <용재수필>에서 처음 사용했다. 서양에서는 에세이(Essay)라 한다. 프랑스 몽테뉴(1533~1592)가 1580년 <수상록>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프랑스어 에세(essai)를 시원으로 한다. '시도' 또는 '시험'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 <열하일기> 속에 기록한 ''일신수필''에서 사용했다. 우리 수필 문단에서는 이를 수필의 시원으로 삼고, 2000년부터 7월 15일을 '수필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16쪽).

 

수필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 중 하나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수필의 다양한 용도와 가치를 뜻하는 말인데, 언제부터인가 망언처럼 변질되어 수필 문학에 끼친 해악이 실로 크다. 수필은 문학의 한 장르이며, 적어도 작가의 가장 내밀한 진실을 표현한 글이다. 어찌 '붓 가는 대로 쓰는' 잡문일 수 있겠는가?

 

김태길 선생은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조건으로 인격이 더없이 탁월하고, 글 솜씨 또한 탁월해야 한다고 했다. 알베르스(R. M. Alberee)는 에세이는 그 자체가 지성을 기반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이미지로 된 문학임을 강조했다. 윤오영 선생은 소설을 밤에, 시를 복숭아에, 수필을 곶감에 비유하면서, 글이 수필처럼 쓰였다 하더라도 정서적인 여과 과정을 거친 글(문학성)이 아니면 수필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20쪽). 여기에 임병식은 수필의 독창성을 발휘하여 남과 차별화하는 것을 포함해 자기 작품별로도 차별화해야 한다(21쪽)고 강조하면서, 참신성, 겸손, 개성을 수필 작품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조건(24쪽)이라고 제시한다.

 

프랑스 언어학자 뷔퐁이 ''문(文)은 곧 인(人)이다''라고 한 것처럼, 글쓴이의 인격과 생각과 느낌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글이 수필이다. 이와 관련하여 임병식은 수필을 쓰는데 두 가지를 기본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즉, 건방지지 않고, 자랑을 피하는 글을 써야 한다(45쪽)는 것이다. 사람은 거들먹거리는 걸 아니꼽게 보고 싫어한다. 수필은 겸손하게 쓰는 글이다. 뽐내면 천박해지고 엄살을 부리면 내숭인 글이 되므로 자기를 거울에 비추듯이 그대로 드러내 주어야 한다(48쪽). 정직하게 써야 나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글이 된다.

 

고흐는 진실로 나는 그림밖에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었다(50쪽)고 했다. 수필은 치열한 사고와 느낌을 담아내는 글이다. 적당히 꾸미고 엮어서 쓰는 글이 아니다. 그래선 생명력이 없다. 글에 땀 냄새가 배고 겸손이 배어있고 아픔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문장이 영혼 없이 매끈한, 마네킹 같은 문장보다 더 끌린다(53쪽). 수필이 영혼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2. 좋은 수필의 조건 

수필에 있어서 형상화와 의미화는 매우 중요하다. 수필은 서사와 묘사로 이루어진다. 서사는 이야기의 줄거리에 해당하고, 묘사는 어떤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여 보여주는 것이다(60쪽). 형상화란 상상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떤 그림의 모습을 이른다. 그것은 묘사로서 구현할 수 있다. 의미화는 표현이 담아내고 나타내는 내용물을 구체화한 것을 이른다(61쪽). 좋은 수필은 사색으로 끌어낸 진솔한 해석이다. 그것은 형상화를 거쳐 의미화한 구체적인 해석이다.

 

수필쓰기와 관련하여 쟁점 중 하나가 허구 인정 문제이다. 이에 관해서는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임병식은 수필은 ''진실을 기초로 하는 문학, 체험을 위주로 하여 쓰는 1인칭 문학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허구로 써서는 아니 된다(66쪽)''는 입장이다. 수필은 사실에 근거해서 양심에 따라 써야 한다(71쪽)는 것이다. 경청할 말씀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모든 수필이 ''자신의 체험과 사유의 산물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남의 삶을 지켜보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또는 책이나 동영상 등을 통한 간접 체험을 인정한다면 체험의 범위가 결코 협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경청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간접 체험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유 중심의 수필을 제3자 관찰자 시선으로 쓸 경우와 '나'라는 화자를 투사하여 1인칭 체험 형식으로 쓸 경우 느낌과 감동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후자를 허구성으로 치부하고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표현 기법이나 시점이 진실성 유무를 가르는 기준일 수는 없을 듯하다. 또한, 진실이란 드러난 사실뿐만 아니라, 그 사실에 관한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것이고, 수필은 단순한 사실의 기록뿐만 아니라, 진실한 가치의 진술을 통해 감동을 전달하는 문학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수필에서 허구 인정 범위는 사실과 진실의 균형일 듯하다.

 

소설가 이청준은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젖은 옷을 입고 거리를 나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어쩐지 개운치 않고 찌뿌둥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73쪽). 글쓰기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추고 자랑하고 싶은 허영과 위선의 장이기도 하다. 수필쓰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에서 임병식은 수필을 죽이는 3가지 요소로, 도덕성의 흠결, 자기 자랑과 과시, 성의 없는 글(74쪽)을 지적한다. 또한, 수필을 살리는 3가지 요소로, 개성이 넘치는 글, 주제와 소재의 일체화, 꾸준한 자기 관리(76쪽)를 권한다.

 

모든 문학은 예술성을 지향한다. 내용과 표현이 미적으로 승화되어 감흥을 일으키도록 부단히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다(78쪽). 글감은 고상함 여부로만 평가되지 않는다. 고상함만 추구하다 보면, 정작 향기는 잃고 조화로만 머물 수 있고, 사변적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79쪽). 적절한 조언이라 생각한다. 수필은 믿음이나 도덕을 설파하는 글이 아니다. 수필은 언어로 형상화, 의미화한 문학이다. 임병식은 이를 거치지 않은 글은 수필이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비수필이라 한다(81쪽).

 

ㆍ단순히 어떤 것을 소개하는 데 그친 글

ㆍ연구보고서와 같이 지식을 전달하거나 담아놓은 글

ㆍ시사적인 화젯거리나 정치 평론의 글

ㆍ도덕적인 훈계나 경고, 명언 소개

ㆍ자기의 생각을 담지 않고 가담항설을 전하는 글

ㆍ말초신경이나 건드리는 저속 저급한 표현의 글

ㆍ자랑이나 과시로 일관한 글

ㆍ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는 횡설수설의 글

 

 

3. 수필쓰기 실제 

수필의 서두는 짧고 명료하거나 신선한 것이 바람직하다(83쪽). 수필의 말미는 글을 읽고 나서 은근히 여운을 남기는 게 좋다(85쪽). 수필의 소재는 신선해야 한다(88쪽). 먼저 무엇보다도 좋은 글감을 찾겠다는 투철한 정신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어떻게' 보는 것과 느낌도 중요하다(89쪽). 다 아는 뻔한 말이다. 하지만, 다 알지만 지키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다 알면서 지키기 어렵다는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임병식은 수필쓰기 훈련을 위해 다음 6가지를 제시한다(90쪽).

 

ㆍ첫째, 눈으로는 '색다르게 보기'를 한다.

ㆍ둘째, 귀로는 '어떻게 들리는가'를 느낀다.

ㆍ셋째, 사물 상호 간의 생김새와 특성을 비교해 본다.

ㆍ넷째, 포착된 글감이 무슨 의미를 던지는가를 본다.

ㆍ다섯째, 다른 것과 연결 짓기를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ㆍ여섯째, 이를 위해 견문 이외 독서 등 간접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조선 후기 독서광이자 문장가인 이덕무(1741~1793)는 ''언어는 소곤거려도 안 되고, 지껄여도 안 된다. 또 산만하게 해도 안 되고, 지체해도 안 되며, 길게 끌어도 안 되고, 뚝뚝 끊어지게 해도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힘없이 해도 안 되고, 성급하게 해도 또한 안 된다.''고 했다. 글을 쓰는 데는 길이 있으며 생각을 그 글 속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절제가 필요(100쪽)하다는 말이다.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을 주장했다. 어떤 상황에 알맞은 표현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맞는 말과 거의 맞는 말은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라고 했다(101쪽). 적절하고 귀한 예시다. 꼭 수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은 언어의 사용에 민감해야 한다. 단지 적재적소에 어휘를 찾아 쓰는 노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언어의 미세한 감각까지도 감지할 수 있는 역량을 연마하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글은 서술과 묘사의 어울림이다. 서술은 줄거리에 해당하고, 묘사는 어떤 정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맛깔스럽게 꾸미는 것이다(103쪽). 수필의 표현 능력은 서술과 묘사의 적절한 배합과 균형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임병식이 제시하는 조언을 8가지다(106쪽).

 

ㆍ평면적 단순성을 극복하고, 입체감 있는 전개의 묘미를 찾으라.

ㆍ점층적인 묘사방법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얻으라.

ㆍ한 문장 내에서 같은 표현과 어휘의 중복을 피하라.

ㆍ문장의 장단에 변화를 주면서 글을 끌고 나가라

ㆍ시제의 다양화 및 관찰자 시점의 다면화하여 글이 탄력성을 갖게 하다.

ㆍ생동감 있는 묘사로 글의 신선감을 유지하라

ㆍ너무 알은체하는 것은 금물이며 알고 있더라도 적정한 선에서 멈춰야 한다.

ㆍ남의 글을 가져올 때나 자기가 창안한 것이 아니면 반드시 출처를 확인하고 밝힌다.

 

파스칼은 ''최선의 책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이 나도 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글은 어디까지나 쉬우면서 물이 흐르듯이 써야함을 이르는 말이다(112쪽). 허균도 ''글은 자신의 마음과 뜻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어렵고 교묘하게 꾸며 쓰는 것은 재앙이다.''라고 했다(114쪽). 조지프 퓰리처는 ''무엇이든지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149쪽).''라고 했다. 글을 쓰는 목적은 독자가 글을 읽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독자가 읽고 이해해야 비로소 글의 역할이 완성되는 것이다. 쉽게 쓴다고 깊이가 없거나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글은 모름지기 자기 생각에 의해 모아진 불씨로 피워내서 자기 글을 써야 한다(115쪽). 글쓰기는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지 남의 글을 옮겨놓는 일이 아니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개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남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하여 차별화된 글을 써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사고를 자유롭게 하고 문체도 특색 있게 자기화해야 한다(117쪽). 작가의 문장은 그 작가의 개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른 작가와 차별화하는 무기다(122쪽).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장을 갖기 위해서는 남다른 훈련이 필요하다. 세상만사가 공짜가 없겠지만, 특히 글쓰기는 오로지 스스로 노력해서 체화된 만큼만 자기 것이다.

 

작품에 오류를 남기는 일은 인격을 흠집 내는 일과 다르지 않다(134쪽).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여 쓸 필요가 있다(139쪽). 오류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부주의에 원인이 있다. 오류는 글과 글쓴이에 대한 신뢰와도 관계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정확히 살피고 명백한 근거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자세와 습관을 익혀야 한다.

 

임병식이 말하는 퇴고의 수순은, 가장 먼저 문맥이 잘 통하는지부터 살핀다. 그리고 더하거나 뺄 부분은 없는지, 오탈자는 없는지의 순으로 글을 반복하여 살펴본다(162쪽). E. B. 화이트는 ''위대한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위대한 고쳐 쓰기만 존재할 뿐이다(149쪽).''라고 했다. 모두 퇴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퇴고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러시아의 문장가 투르게네프는 글을 3개월 간격으로 퇴고했으며,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200번 넘게 고쳤다(163쪽)고 한다. 일필휘지를 부러워할 것도, 자주 퇴고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할 일도 아닌 것 같다(164쪽). 퇴고의 횟수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느냐가 글쓰기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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