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코벤트가든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류귀숙 "선물"

강명옥 | 기사입력 2023/03/06 [07:04]

제51회 코벤트가든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류귀숙 "선물"

강명옥 | 입력 : 2023/03/06 [07:04]

 

▲ 선물전달     ©영월군

선물

 달을 품은 듯, 보물을 안은 듯, 한 아름 풍성함이다.

 중국 본가에 갔던 중국 딸이 중국을 통째로 들고 들어오는 듯하다. 대륙의 딸답게 초대형 부피를 안고 들어오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두 팔 벌려 안아도 넘치는 큰 기쁨을 안고 들어온다.

 "언마 이거 '마스크팩'하는 기계예요. 언마도 이제 피부에 관심을 가지세요. 중국에서 사 왔어요."

 '중국에서 사 온 거라고!' 순간 '성능은 별로일 거야.'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친다. 얼른 그 마음을 떨쳐내고 반가운 선물을 가슴에 안아본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딸아이의 마음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내가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 마음 고이 접어 가슴에 쟁여둔다. 그 큰 짐을 들고 낑낑대며 출입국 검색대를 통과했을 그 수고가 딸아이의 눈가에 묻어있다. 열두 폭 어미 마음으로 그 아이를 감싸 안아본다.

 "이 기계에 야채나 우유, 꿀 등을 넣고 달팽이 점액 추출물 알약을 넣어 팩을 만들어 쓰세요." "다음에 만날 때는 젊어져야해요." 이 말을 남기고는 직장일로 바쁘다며 총총 가 버렸다.

 온 집안에 가득한 딸의 향기에 취하고, 손에 닿는 선물의 촉감에 한참 동안 행복했다.

 이렇게 정성과 사랑을 담은 선물은 감동적이다. 그 물건이 하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 정성이 보이니 충분히 행복하다.

 중국 딸 핑핑과 모녀로 지내면서 그동안 수차례 물질이 오갔고, 마음도 따라다녔다. 이제 제법 두툼한 시루떡처럼 모녀관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동안은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편이었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딸애를 보면서 나또한 뿌듯했다. 모두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보람되고 기쁨을 준다고 했다. 나도 그걸 체험하면서 그게 맞는 말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불쑥불쑥 일어나는 받지 못한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이들에게 또 중국 양딸에게 수시로 지갑을 열었다. 그러나 받는 즐거움이 더욱 크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받은 물건을 볼 때마다 물물이 당시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중국어로 된 해설을 읽고 기계를 조작해서 팩을 만들었다. 처음엔 중국 제품이라 얕잡아 보는 마음이 한편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험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재료만 넣으면 자동으로 팩이 나오고 자동으로 기계세척까지 됐다. 기계를 빠져나온 팩은 우뭇가사리처럼 뭉클뭉클하고 반짝이며 촉촉했다. 팩으로 얼굴을 감싸고 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생각할수록 사랑스럽고 귀여운 딸이다. 국적이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달라도 인간이라는 것 하나면 모든 게 통한다.

 선물은 받아서 즐겁고 주어서 흐뭇한 것이다. 그 속에 목적이나 바라는 욕심만 넣지 않는다면 이름값을 톡톡히 해 낸다.

 아름다운 선물 이야기의 대표로 미국 작가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소설이 있다.

 어느 가난한 부부가 선물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가보로 내려오는 고급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샀다. 또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시계 줄을 샀다. 필요 없게 된 선물을 받은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이 부부는 그 해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행복하게 보냈다는 이야기다.

 소녀시절 이 소설을 읽고 선물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특히 남편에게 감동적인 선물을 받는 꿈을 간직했다. 그 시기는 나만의 날인 생일 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에도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명절보다 생일이었다. 이날만은 나를 위해 찰밥에다 미역국을 끓이고, 생선 반찬에 잡채, 떡, 식혜까지 준비됐다. 생일이 겨울철이라 곡식이 풍성한 탓도 있겠으나 이건 전적으로 어머니의 정성이었다. 그날은 귀빠진 날이라며 공주처럼 떠받들어 주었다. 개구쟁이 동생까지도 나를 괴롭히면 안 되는 유일한 날이었다. 이런 옹골찬 생일상에 대한 기대에다 소설 속 환상까지 더해지니  선물에 대한 기대는 이미 집채만 하게 커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 환상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다. 앞장 선 주동자는 바로 남편이었다. 그 실망감은 서운함을 넘어 억울하고 분한 마음까지 품게 했다. 시부모한테는 처음부터 기대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강아지 생일쯤으로 알고 아예 무시해 버리니 기분이 씁쓸했다. 그래도 세월이 가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 또한 처참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여기다 한술 더 뜬 아이들은 죄다 아빠를 닮아있었다. 아빠와 아이들이 한통속이 돼서 모르쇠작전을 벌이는 듯했다.

 그때부터 일 년에 한 번씩 가장 쓸쓸한 날을 맞이해야 했다.

 

 자존심 땜에 누구에게도 말 못했던 쓸쓸한 비밀을 공유하는 날이 왔다.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나와 비슷한 친구도 있었다. 물론 내가 가장 심한 수준이겠지만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다. 나와 동지가 된 그 친구가 아주 멋진 처방을 내 놓았다. " 기다릴 것 없어,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내가 하면 되지." 라고 가볍게 말했다. 또 자신은 진즉부터 실천해 오는 중이라고 했다. 실로 번연개오(幡然開悟)의 순간이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 비로소 서광이 비쳤다. 이제부터는 내가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물건을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한걸음씩 다가가는 거다. 일 년에 하루, 가장 즐거운 날을 위해서….

 선물 속 카드에는 이렇게 쓰려고 한다. '올 한해도 열심히 살았어, 내년에는 더 가치 있는 선물로 보답할께.'

 이젠 갖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정해 놓고 실천해 가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빛나는 선물들이 나의 선물함을 장식할 거다. 또 그 속에 보석보다 더 빛나는 행복과 희망도 가득 채워 넣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여고 때 즐겨 암송했던 시구가 생각난다. 작가는 알 수 없으나 그 뜻이 하도 좋아 암송했던 시이다.

   <자중 자애>

나는 참되라네 나를 믿는 이 있으니

나는 깨끗하라네 나를 아끼는 이 있으니

나는 굳세라네  받을 고난 많으니

나는 겁 없으라네 당할 위험 많으니

 그렇다. 나를 세워줄 사람은 나이고, 나를 위로할 사람도 바로 나이다.

 행복과 불행이 모두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을…. 괜히 속만 끓였네.

▲ 제51회 코벤트가든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류귀숙  © 강명옥

 

* 경남 합천 출신 ,대구 거주

*한올문학수필등단소설미학」소설 등단

*저서:

수필집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소설집 잃어버린 시간

*대회수상대구천년기념 백일장 대상 수상

 

현재한올 작가협회 회원에세이스트 회원소설미학 작가협회 회원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및 그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거나, 이들을 비방하는 경우 「공직선거법」에 위반됩니다. 대한민국의 깨끗한 선거문화 실현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토지문학 관련기사목록
더보기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