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의 눈물(박영원 지음, 2017) / 차용국

차용국 | 기사입력 2020/08/23 [16:45]

몽의 눈물(박영원 지음, 2017) / 차용국

차용국 | 입력 : 2020/08/23 [16:45]

▲ 몽의 눈물(박영원 지음, 2017) / 차용국  © 강원경제신문



몽의 눈물(박영원 지음, 2017)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시는 / 세파를 헤쳐 가는 / 아버지의 가슴앓이 / 독백이다

 

시는 / 가슴 태워 어둠 밝히는 / 어머니의 찡한 / 넋두리이다

 

시는 / 희로애락이 / 시시콜콜 용해된 / 삶의 애증이다

 

시는 / 가슴 따뜻이 스미는 / 꽃과 새들의 노래 / 우주의 교향곡이다

 

(여는 시, ''4'' 전문)

 

박영원 시인의 '서시'입니다. 시인은 '여는 시'라고 부릅니다. 많은 시인이 시집 이름 다음에 서문 대신 '서시'를 수록하곤 합니다. 시인은 시로 말하는 것이니, 굳이 시집에 서문을 쓸 이유는 없지만, 독자에게 시집에 수록된 시의 제목부터 들여 미는 것은 무례일 듯하여, 넌지시 시 한 편을 읽고 가라 권합니다. 그래서 '서시'는 시집 속 각각의 시처럼 한 편의 독립된 작품일 수도 있고,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시심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여는 시 '4'는 박영원 시인의 제8시집몽의 눈물의 주제를 함축한 시라 하겠습니다. 즉 이 시집의 시적 대상인 아버지(1), 어머니(2), (3), 우주(4)에 관한 시향입니다. 시집을 펼칩니다.

 

연은 무욕의 부처다.

 

전생의 업보 가슴으로 삭이며

담담한 미소와 순박한 손길로

온 몸을 중생에게 보시한다.

 

때로는 하늘이 베푸는 우로마저

분에 넘치는 은총인 양 털어낸다.

전생의 업보 속세의 온갖 번뇌

모두 공수레공수거의 등짐인 양.

 

골다공증에 휘어진 다리

연옥 속에 묻어놓고

중생에의 자비 멈추지 않는

염화미소의 자세로...

 

연은 한평생 그렇게 산다

 

(''- 연차를 마시며'' 전문)

 

이 시의 소재는 ''이지만, 시인은 '연차를 마시며'라는 부제를 달아 시적 대상인 연을 노래하는 언술의 주체가 자신임을 선언합니다. 즉 연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시인의 심안에 포착된 연의 원 모습을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연을 무욕의 부처와 같다고 합니다. 전생의 업보와 속세의 온갖 번뇌를 가슴으로 삭이며, 온몸을 중생에게 보시하고 미소 짓는 모습. 골다공증에 휘어진 다리마저 연옥 속에 묻어놓고 중생에의 자비를 멈추지 않는 삶의 자세.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연은 시대의 아픔을 감내하며 사는 아버지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시에서 비록 아버지란 단어는 없어도, 연을 아버지로 치환하여 읽으면 아버지의 속 깊은 울림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세파를 헤쳐 가는 / 아버지의 가슴앓이 / 독백('4' 일부)'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결코 속내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유년의 추억 속에 아버지는 늘 '담담한 미소와 순박한 손길'을 내미는 듬직한 어깨였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속에 꽁꽁 묶어놓은 아픔과 번뇌를, 이제 옛날의 아버지와 같은 연배가 되어서 깨닫고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차를 마시며'' 말하는 독백은 아버지의 독백이면서 시인의 고백입니다. 아버지가 시인에게 유전한 것처럼, 시인이 미래 세대인 자식에게 유전할 잠언일 수 있습니다. 50년 이상의 튼튼한 내공이 다져진 원로 시인의 고품격 은유라 하겠습니다.

 

지금도,

5일장이 서는 곳에 가면

태산 같은 엄마 광주리

채소 몇 다발 덜어 메고

20여 리 돌길 신작로를

복에 겨운 검정고무신으로

타박타박 따라간다,

엄마 뒤를

 

(슬픈 추석 - 5일장)

 

박영원 시인에게 엄마는 단순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시인 자신입니다. 시인은 제7시집위대한 바보, 그 이름 어머니에서 보여준 시심의 연장이라 하겠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태산 같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20여 리 돌길 신작로'를 견디며, 5일장을 찾아 걸어가는 바보 같은 어머니 말입니다. 어머니의 고행은 가족을 위한 강한 책임감과 사랑의 재현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위대한 바보, 어머니''태산 같은 광주리'에서 '채소 몇 다발 덜어 메고', '엄마 뒤를'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위대한 바보, 엄마의 내리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진술이라 하겠습니다.

 

박영원 시인의 시향은 한 시점에서 머물러 있지 않고, 시공간을 넘나들며 피는 꽃향기입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고, 공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연결의 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족애와 희생의 미는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의 세대를 향한 기대와 소망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나라와 사회를 초월한 인류애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거대 담론으로 진화하는 그의 시향은 요란스럽거나 격렬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실천을 통하여 보여주는 넛지의 방식입니다.

 

왜 이런 짓을 하냐구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에이즈보다 배고픔이데요. <희망의 학교> 교장님의 말씀 들어보세요. 그 학교 전교생 139명 중 456학년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이유를. 12~13세가 되면 대부분 여학생들은 부모의 묵시적 동의하에 즐기러 다니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세상에 이토록 눈물겨운 행복 또 있을까요?

 

('몽의 눈물' 일부)

 

이 시집의 이름이기도 한 몽의 눈물은 캄보디아 프놈펜 중심가의 창녀, '가난에 만신창이가 된 소녀 몽'을 화자로 등장시킵니다. 다소 사변적이고 산문적인 내용과 형식의 이 시를 시답게 만드는 것은 ''이라는 어린 소녀의 진술입니다. 시인이 화자가 되어 직접 말해버리면, 고루한 도덕 강의 또는 사회비판의 소리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몽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배고픔'이라고 하면서, '부모의 묵시적 동의하에' 행하는 매춘을 '눈물겨운 행복'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이 시를 지으면서 '초근목피와 물로 주린 배를 달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던 자신이 오히려 행복했다'고 합니다.

 

시인은 625전쟁과 40~60년대 절대 빈곤의 시대를 견뎌내며 자식들을 키워낸 아버지, 어머니를 눈물겹도록 그리워합니다. 당시 한국의 상황은 2000년대의 캄보디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아내는 것이 절체절명인 시대에 꿈도, 자존감도, 비굴함도 가슴에 묻고, 억척 같이 살아서 미래(자식)가 살아갈 터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긍정적으로만은 보아주지 않았습니다. 독제와 정의에 눈 감고 묵인한 비겁하고 속물스런 세대로 낙인찍혔습니다. 기성의 권위가 추락한 자리는 이념의 세대로 대체되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른이 없는 시대입니다.

 

박영원 시인이 소망하는 세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어 상생하는 사회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고 발전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의 행복도 그렇게 유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우주라 합니다. 그의 우주는 누구도, 무엇도 배척하지 않는 포용과 사랑입니다. 박영원 시인의 ''우주''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졸필을 접으면서.

 

해와 달을 출산하는

, 그 바다는

온갖 생물의 양수이다

 

햇살로 온갖 생물 보듬는

, 그 대지는

만물의 자궁, 어머니의 품속이다

 

물과 흙이 빚는 신비의 조화,

무량무변의 우주는

삼라만상의 아방궁이다

 

('우주' 전문)

▲ 서평쓰는 시인 차용국     ©강원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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