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로 가는 길엔 노오란 유채꽃이 강물처럼 막아서고 끊어진 다리 끝에는 녹슨 진물이 흘렀지
네 운명이 아니라던 벼락같은 언도에 형벌은 귀가 닫히고 입이 막히어 죄인이 되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담장 속 철문으로 죽음을 맞는 일뿐이지만 그마저 허락되지 않는 건 장막 뒤 신의 개구짓인가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는 자신의 계시를 다시 섬기며 끊어진 다리를 잇기 위한 단련을 시작하지만
강을 지나면 또 다른 강이 나서듯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가로막는다
네게 가는 길은 이리도 힘들구나
- 산 넘어 산 -
48. 산 넘어 산
"제가 여기 법인에 근무한 지, 거의 석 달 정도 지났을 때입니다. 법인장으로 부임한 지 대략 5년 1개월이 되었으니 벌써 4년 10개월, 5년이 다 된 얘기네요.
상해에서 이곳 무석까지 오는 길에 유채꽃이 노란 강물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던 어느 봄날, 중국의 제법 규모가 큰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왔다며 저를 찾아와 사업면담을 요청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와 무석의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겸해 술자리가 있었고, 이어 한국의 룸싸롱 분위기가 나는 한 깔끔한 가라오케에서 2차로 술자리를 가졌는데, 둘 다 술이 거나하게 취할 무렵, 그의 본격적인 사업제안이 나왔습니다.
그때 저희 중국 법인은 한국 본사에서 선박을 이용해 부품을 들여와서 이곳 법인에서는 단순히 기현자동차에서 생산하고 있던 차종별 배리에이션별로 분류를 해놓고,
기현자동차 생산시스템에서 보여주는 생산 일정에 따라 서열화해서 제 때에 맞추어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에 납품만 하면 되는 사업구조였는데,
이분이 제안한 것은 바로, 자기들이 아주 저렴한 단가로 동등한 품질의 와이어하네스를 공급해 줄 수 있으니 한국에서 들여오는 걸 중단하고 자기네 회사의 것을 써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분이 제시한 단가를 살펴보니 우리가 한국에서 들여오는 제조와 물류코스트를 합한 가격의 70퍼센트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코스트를 30퍼센트 가까이나 절감할 수 있게 해준다니 술에 취한 제 눈이 번쩍 뜨였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기훈 상무의 눈빛이 그때를 회상하며 바로 그의 눈앞에서 상황이 전개되는 것처럼 호기롭게 반짝이며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사무실 창밖으로 멀리 독수리인지 참매인지 모를 새 한 마리가 허공에서 호버링을 하며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것이 연수의 눈에 들어왔다
"제가 그들의 제안을 듣고 생긴 궁금증은 이들이 왜 이렇게 싼 가격으로 공급을 하겠다는 건지, 그들이 말하는 대로 기현자동차에서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정말로 맞춰줄 수 있는 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어지는 제안은 그런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자기는 기현자동차 뿐만 아니라 MH자동차 중국법인에도 많은 종류의 부품을 납품하는 자동차부품 제조회사를 중국 내 여러 곳에 가지고 있는 태왕그룹이라는 곳에서 왔는데,
지금까지 사소한 품질문제로 클레임이 걸린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품질문제 때문에 자동차 생산에 차질을 빚게 하거나 큰 문제가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어차피 기현자동차에 납품하는 단가는 정해져 있으니 약 30퍼센트의 코스트 절감분 중 반을 다시 자기들에게 현금으로 돌려달라는 대담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더 놀라웠습니다.
자신은 머쟎아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니 자신을 믿어달라고 했고, 아울러 보안도 철저히 지켜줄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적당히 좋아진 탓도 있고 우리 회사로 봐서는 결코 손해를 보는 장사도 아니어서 술김에 덥석 그러자고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며칠 동안, 저도 많은 고민을 하다가 제 개인적 욕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희의 한국 본사에는 리베이트 얘기는 빼고 10퍼센트가 넘는 단가를 절감할 수있는 기회라며 본사를 설득했고, 나머지 일부 금액은 본사를 속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을 하게 됐습니다.
장상무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협력업체를 돌아다녀 봐서 사정을 아시겠지만 우리는 주재원으로 나와도 본사에서 충분한 급여나 생활비, 판공비 등이 제공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리저리 비공식적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은 많고 굉장히 열악한 근무환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제가 순간적으로 욕심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김기훈 상무는 여기까지 얘기하고는 연수를 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연수에게 미안한 일은 아니었지만, 연수에게 자신의 사정을 잘 헤아려주고 잘 봐달라는 의미였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김상무가 의외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게 그런 제안을 했던 분이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으로 부임해 왔는데 그분이 바로 구매본부장인 이상일 전무입니다."
연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하얘졌다
이상일 전무는 이한경 상무가 연수에게 주었던 비선조직의 명단에 들어 있던 사람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룹 인사실의 김윤오 차장이 확인해 준 명단을 다시 받아든 연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단순히 왕영홍 부회장이 추천해서 그룹의 중국통 임원으로 들어와 기현자동차 중국법인에 도움을 주는 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김기훈 상무의 말대로 이상일 전무가 중국 협력업체 리베이트 의혹의 핵심인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어서 문제가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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