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59)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10/01 [18:13]

바람의 제국(59)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10/01 [18:13]

▲     ©정완식

 

제4부. 바람의 길 

 

길을 떠났던 바람이

폭풍의 언덕을 넘고

숨 멎은 강을 건너

꽃사슴이 떠난 들판을 지나

키 작은 소년의 옷을 입고 돌아왔다 ​

 

태어나 아무 것도 못해보고

돌아와 누운 것이

실패인 것 같아서

나즈막이 울던 바람이

목을 놓았다 ​

 

폭풍우 지나간 언덕에는

벚꽃잎이 지천으로 덮이고

검붉은 강에는 상류로 돌아간

연어가 남겨놓은 은비늘만 윤슬로 빛나고

들판을 떠난 짐승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

 

흐르는 강에 길이 있다는 건

그곳에 마음이 간다는 것

바람에 길이 있다는 건

살면서 받아내는 압박이

너와 나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 ​

 

이파리 하나 남기지 않은

빈 몸뚱이어서

휘감아 도는 바람은

거칠 것이 없다 ​

 

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여전히 말이 없는 바람에 묻는다

너는 어디로부터 와

어디로 가느냐

 

- 바람의 길 -

 

 

60. 희생양

 

 

식솔을 볼모로 삼고 

조상을 욕보이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니 

천하장사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네​

 

나 하나 제물 되어 

세상만사 편해지면 

백골이 진토가 된들 수백 번을 고쳐 죽은들

남을 원이야 있을까만​

 

대장부로 태어나 

기개 한 번 못 펼치고 

역사의 죄인으로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가기에는​

 

충정으로 품은 열정 

태양보다 뜨겁고 바다보다 깊으니 

오간 데 없는 허상 하나 붙들고라도 

연옥의 고통을 다 받아내련다​

 

- 희생양 - ​

 

연수가 열흘간의 첫 중국 출장 특감을 비교적 무난하게 마치고 복귀한 뒤, 감사 총서라고 할 수 있는 감사결과보고서 작성과 최고경영층에 보고할 최종 보고자료를 점검하고 검토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오후에 연수는 김윤오 차장으로부터 뜻밖의 안 좋은 소식 하나를 들었다​

 

이한경 상무를 본사에 복귀시키는 인사발령 품의서가 중국 사업 총괄본부장인 왕영홍 부회장의 결재를 받아 그룹 인사실에 접수되었다는 것이었다​

 

발령의 명분은 지속되는 중국법인의 부진에 대한 책임과 함께, 인건비 절감을 위한 중국 현지의 인력감축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국법인 총경리인 한길 부사장은 그 책임이 거론되지는 않았고, 이한경 상무가 그동안 중국법인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마무리와 함께 가족들의 귀임준비 기간을 감안해 주어서 한 달간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었다​

 

김윤오 차장의 연락을 받고 나니 연수의 머리를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이한경 상무의 이상일 전무와의 껄끄러운 관계였다​

 

이한경 상무는 이상일 전무의 리베이트 의혹사건 연루와 관련하여 연수와 계속 연락과 협의를 하면서, 이전무의 동태를 살피고 법인의 기획본부장으로서 그의 수상한 업무처리 내용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었는데,​

 

그런 이한경 상무의 견제와 연수의 지난 중국 출장 특감에서의 협력업체 리베이트 의혹사건 조사가 이상일 전무의 귀에도 흘러 들어가면서 이한경 상무와의 신경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소식을 연수도 들은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해도 아마 위기의식을 느낀 이상일 전무가 왕영홍 부회장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분노한 왕영홍 부회장이 이한경 상무를 괘씸하게 여기고 본사로 복귀시켜 눈엣가시를 뽑아버리려 생각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연수의 중국 출장 특감보고서는 아직 최고경영층에 보고되지 않았고 대략의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여상동 전무밖에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수도 중국사업본부의 일이긴 해도 태스크포스는 그룹기획실의 감사팀 소속이기 때문에 연수의 중국사업본부 상사인 진대기 사업부장이나 왕영홍 부회장에게는 따로 특감과 관련해서 보고한 내용이 없었으므로 연수는 아직 그들에게 한 발자국 비켜나 있었고, 결국 왕영홍 부회장이나 이상일 전무의 공격 타겟은 이한경 상무가 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다행히 왕영홍 부회장은 지금 중국 사업의 부진으로 인해 “전진 배치”라는 이름으로 중국 현지에 나가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본사에는 두 달째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왕영홍 부회장이 최고경영층에 보고되는 연수의 특감보고서 내용을 인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그렇게 되면 다음 타겟은 연수나 여상동 전무가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연수는 바로 여상동 전무에게로 가서 그의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무는 데스크탑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보고 있다가 연수가 들어서는 걸 보고 마침 잘 왔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흔들며 그의 원탁 테이블 자리로 연수를 안내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장상무도 이한경 상무의 인사발령 관련 소식을 들었나 보군요."​

 

여전무도 이한경 상무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네. 그래서 그 문제를 전무님과 상의하려고..."​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장상무한테 연락을 하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장상무는 이상무에 대한 귀임 발령 의뢰 건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왕영홍 부회장이 부임한 지 이제 갓 일 년 정도 된 이상무를 귀임시키려고 한다는 건 이상무가 그의 눈 밖에 났다는 겁니다.​

 

아마 이상일 전무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 이한경 상무를 이전무가 못마땅해하거나 뭔가 눈치를 채고 사전에 싹을 자르려고 술수를 부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 생각도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출장보고서 정리는 언제쯤 마무리될 것 같은가요?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네. 저희 기현팀 보고서는 거의 다 끝나가고, 최종적으로 정합성 검토와 관련 증빙자료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감사 결과보고서는 아마 다음 주초에는 전무님께 보고드릴 수 있을 것 같고,​

 

전무님께서 기획조정본부장이신 김용국 부회장님께 보고가 완료되면 최고 경영층께 보고드릴 최종보고서는 김용국 부회장님의 의견을 담아서, 바로 완성된 보고서를 상신할 수 있도록 지금 같이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보고서 내용이 그토록 빨리 완성이 된다니 다들 수고가 많았겠네요. 

아무튼, 지금은 속도가 중요하고 뭐가 됐든 속전속결로 해야 합니다.​

 

이한경 상무의 귀임까지 한 달 정도가 남았으니 이상무를 구제할 수 있는 기회 역시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자칫 늦어지다간 이한경 상무도 구제해줄 수 없을뿐더러, 장상무나 나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최대한 서둘러 봅시다."​

 

여상동 전무는 연수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신이 먼저 하고 있었고, 연수는 다시 한번 여전무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속으로 여전무에게 감사해했다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10/05 [09:09] 수정 삭제  
  후~~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네요. 즐독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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