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제국(57)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기사입력 2021/09/24 [10:40]

바람의 제국(57)

詩가 있는 詩소설

정완식 | 입력 : 2021/09/24 [10:40]

 

들판의 들짐승을 다 잡으니 

불테리어는 끓는 물 속으로 들고 

물속의 물고기를 다 잡으니 

가마우지는 타는 불 속으로 드네​

 

나라를 세우고 나니 

개국 장수 축출되고 

회사 밭을 일구고 나니 

양신 농부 쫓겨나네​

 

들판에서 물속에서 

나라도 회사도 

거짓 명분과 권력 앞에서는 

공신도 양신도 다 잡아먹더라​

 

- 토사구팽(兎死狗烹) - 

 

58. 토사구팽(兎死狗烹) 

 

이한경 상무가 일러준 정호일 사장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은 성도 시내 중심의 좌측에 있는 인민공원과 사천미술관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널찍한 홀에 이십여 개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중앙통로 좌우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고, 그 안쪽 기다란 가림막 뒤로 제법 큰 주방과 일을 하는 대여섯 사람들이 보여 언뜻 보아도 이곳 성도에서 제법 성공한 식당으로 보였다​

 

열한 시를 갓 넘긴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홀에 손님은 보이지 않았고, 입구 쪽 카운터에 마침 혼자 앉아 있던 정호일 사장은 연수가 들어서자 금방 그가 이한경 상무가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혹시 이한경씨가 보낸 분이신가요?"​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연수라고 합니다. 

MH그룹 감사팀 일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혼자 오셨나요? 일행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 동료들은 다른 일정이 있기도 하고, 혹시 사장님께서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저 혼자 왔습니다."​

 

연수는 방부장과 박차장, 그리고 이과장은 무후사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다가 근처에서 점심 식사 후, 두보초당으로 가서 원래 계획대로 문화체험을 하라고 일러 놓고,​

 

자신은 정호일 사장을 만나고 난 뒤 시간이 되면 두보초당에서 일행을 만나거나, 아니면 저녁에 호텔에서 보자고 하고는 곧장 그들이 있던 차관을 떠나 이곳 정호일 사장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왔었다​

 

정호일 사장은 연수를 확인하고 주방 안에 있던, 그의 부인인듯한 중년의 한국 여성에게 손님이 와서 그러니 바깥쪽의 홀도 좀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연수를 안내해 주방 옆으로 나 있는 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통로 왼쪽의 화장실을 지나니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더 있고, 그 문을 밀고 들어가자 거기에는 6인용 소파와 기다란 티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정호일 사장 부부나 일하는 사람이 쉬는 시간에 이용하는 휴게실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맨 안쪽에 테이블을 사이로 마주 보며 앉았다​

 

"우선 어려운 결심을 해주셔서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내부 고발을 한다는 것이 현재는 그만두신 직장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나 상사를 배신하는 행위로 비칠 수 있어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본격적인 사장님과의 면담 전에 사장님께 미리 양해 말씀을 드릴 게 있는데, 저희 감사의 업무 절차상 필요해서 그러는데 사장님 말씀을 녹취 해도 되겠습니까?"​

 

정사장은 연수의 녹취 제안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지난 밤부터 고민을 해오던 정호일 사장은 이제는 결심을 굳힌 듯 보였다​

 

"네. 좋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제 있는 속을 다 말씀드리는 것으로 결심한 이상 뭐가 문제겠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이한경 상무가 태왕그룹에 대해 곤란한 질문을 해 왔을 때, 무작정 피하려고만 했었는데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보니 저 혼자만 안고 살아야 하는 짐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요즘 “공익제보”니 “휘슬블로워”니 하는 단어들도 많이 언론에 등장하던데 제 경우가 공익제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늦긴 하였지만, 이제라도 하게 된 거죠.​

 

사실 여기 성도가 큰 도시이긴 하지만 정착해서 사는 한국인이라고 해봤자 기백 명 정도이고, 제가 그들 사이에 배신자로 낙인찍히어 왕따를 당하거나 이곳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큰 태왕그룹 왕영홍 회장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긴 하지만...,"​

 

정호일 사장은 어떤 회한이나 격정, 또는 억울한 심경같은 것이 밀려왔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감정을 추스르며 앉아 있었고, 연수 역시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그가 앞으로 연수에게 어떤 말을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어떤 불이익이 그에게 닥칠지, 무엇을 스스로 감당해왔고 또 앞으로 감당해 나가야 할지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는 대만에서 이한경 상무와 같이 동문수학을 해서 이상무는 잘 알고 지내고 있었고, 아시겠지만 태왕그룹의 왕영홍 회장이 중국에 진출해서 처음 세운,​

 

태왕그룹의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태왕차체라는 회사에서부터 왕영홍 회장을 모시고 회사를 일으켜 세운, 주역 중의 한 명이자 재무담당 총책임자로 있었는데,​

 

기현자동차가 중국에 진출한다는 소식을 접한 왕회장이 상달그룹의 장송 총경리와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유치전을 위해 손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었지요.​

 

그러고 보니 벌써 이십 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리는 중국에서 값은 싸지만 품질은 조악한, 자동차 강판을 가지고 값싼 중국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수입 프레스로 차체를 찍고 다듬어 중국 내의 완성차 회사에 납품해서 제법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는데, 왕회장이 그때부터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상달그룹이 지금의 예청지역에 기현자동차를 유치할 수 있도록 예청시 정부와 관계 조직에 로비를 할 때 많은 돈이 들어갔는데, 자금력이 약한 상달그룹을 대신해서 자금줄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왕영홍 회장이었고, 그 돈은 고스란히 제가 회삿돈을 횡령하여 조달하거나 그도 안되면 외부에서 차입을 해와서라도 왕회장에게 대주어야 했는데, 그게 한두 해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돈을 받는 사람들은 계속 받게 되어 있고, 주는 사람은 한번 돈이 들어갔으니 본전을 뽑을 때까지, 아니 그 후로도 계속 돈을 대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당시에 우리 회사가 돈을 제법 벌었다고 하더라도 규모가 작은 일개 중소기업에 불과한데 돈을 벌면 얼마나 벌 수 있었겠어요? 결국, 무리하게 돈을 빼내다 보니 우리 태왕차체 회사만 부실해진 거죠.​

 

그래서 이중 삼중의 회계장부를 만들어야 했고, 그렇게 어찌어찌 버티어 나가면서 결국은 왕영홍 회장과 상달그룹의 장송 총경리가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죠.​

 

왕영홍 회장이 MH그룹의 중국 사업 본부장으로 영입되면서 중국 사업을 총괄하게 되고, 나중에는 사장과 부회장으로 승진까지 했지요.​

 

그리고 이곳 태왕그룹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손을 떼는 것으로 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의 친척을 대표로 앉혀 여전히 그가 지배하면서, ​

 

예청의 기현자동차 중국법인뿐만 아니라, 나중에 북경에 진출한 MH자동차의 협력업체들까지 거의 이십여 개의 회사를 만들거나 인수해서 다 태왕그룹의 손아귀에 넣었어요.​

 

그리고는 값싼 단가를 무기로 MH그룹의 양쪽 중국법인에 부품들을 납품하면서 다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횡령했던 돈이나 차입금은 조금씩 메꿔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인가? 왕영홍 회장이 여기 성도를 다녀간 뒤 그의 친척이라는 총경리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성도의 다른 부품업체 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거예요. 

그것도 당장... 

 

물론 태왕차체에 있는 모든 자료나 장부, 심지어는 내가 쓰던 펜 하나까지 다 그대로 놔두고 가라고...​

 

옮기라는 명분은 그 회사가 어려우니 능력이 있는 내가 그 회사의 사장으로 가서 회사를 정상적인 우량회사로 잘 키워보라는 거였지만,​

 

저한테 옮겨가라고 한 그 회사는 내가 그전부터 알고 있던 회사로서, 기술도 자금도 경쟁력도 없는, 곧 정리해야만 할 부실회사였어요." 

 

과연 사람들 말대로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좋은 사냥개를 삶고, 

나는 새가 다 잡히니 

좋은 활도 헛간에 들어가며, 

적을 다 무찌르고 나니 

계책을 꾸며준 책사가 망하네.

 

천하가 이제 다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삶아 죽이겠군.​

 

- 범려(중국 월나라 책사) 한시中 - 

 

註 : 본 시소설은 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소재로 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ㅇㄷㄱ 21/09/28 [09:19]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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