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물을 좋아한다. 선물을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특히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내가 건넨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차피 선물을 할 거면 좀 더 특별한 걸 해주고 싶어서, 선물을 고를 때부터 이미 설레는 마음이 된다. 가격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평소에는 자신을 위해 절대 살 리 없는, 그러나 잘 어울리는 선물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게 난 참 기쁘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년 12월 설립한 고액기부자 클럽이다. 처음 가입해 얼마의 금액을 넣고 5년 동안 1억을 기부하면 된다. 돈이 많아서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 첫 모습을 보고 부잣집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다 펼쳐놓으면 우여곡절 많은 어떤 이의 인생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연이 많은 사람이 나다. 아너소사이어티가 되는 데에도 어려운 과정은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1억 원을 채우면서 ‘혹시 저 사람, 말만 해놓고 안 하는 거 아니야?’ ‘기부도 다 안 해놓고 아너소사이어티인 척하네?’ 하는 따가운 눈초리를 참 많이도 받았다. 마침내 1억 원을 모두 기부하던 날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었던 한 사람, 할머니는 마지막 헌정액 기부를 앞둔 두 달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돈이 많아서 기부한 것이 아니었다. 기부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날 하늘을 보며 할머니와 아빠에게 말했다. “나 잘했지?” “참 잘 컸지?” 그 말을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 너 해냈구나 하는 칭찬의 눈물, 사람들의 의심과 따가운 눈초리를 잘 참아냈구나 하는 대견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 나는 나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었다. 나에게 기부는 선물이다. 선물은 누군가를 위한 나의 마음이다. 내가 많은 것을 가져서 하는 게 아니라 정성이 담긴 노력이다. 나는 특정인을 위해 선물을 사기보다 눈에 보일 때 예쁜 것들을 사서 진열해놓고 인연이 생겼을 때 그중 하나를 소중하게 선물한다. 특히 신발을 많이 선물하는데 거기엔 ‘함께 꽃길만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사이즈가 되었든 그저 눈에 보일 때 사두었다가, 신데렐라처럼 그 신발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건네주는 것이다. 마침 그 신발이 임자를 만났다 싶으면 선물을 받는 사람도 나도 아주 행복해진다. 우리는 꼭 함께 꽃길을 갈 거라고, 나는 가득 내 진심을 담아 선물을 보낸다. 그 선물은 우리의 인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좋은 길을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다는 내 마음은 어김없이 전달되기 마련이다. 또 5월은 내 생일이 있는 주간인데, 그때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꼭 선물을 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집이나 차처럼 큰 선물까지. ‘열심히 잘해왔어. 잘 컸어. 잘했어.’ 하면서.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걸 칭찬하며 멋진 선물을 한다. 남에게 주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 주는 것도 기쁘다. 그 기쁨은 어려운 고비를 힘겹게 넘겨왔을수록 더 뜨겁다. 내가 주는 선물은 크고 작은 기부, 소소한 선물부터 큰 물질도 있지만 ‘말 한마디’도 있다. 자주 가는 중국집 이모에게 “이모, 오늘도 예뻐요!” 하고 말을 건네고, 미용실 언니에게 “어쩜 일하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까. 사랑해요, 언니!” 하고 말한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건네는 이 작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선물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건 일상 속에 숱하게 듣는 부정적이고 상처가 되는 말보단 훨씬 힘이 되리란 사실이다. 그건 분명 충분히 값진 선물이다.
며칠 전 50대 초반의 한 지인이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물을 건네는 것,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나누는 일은 내가 나중에 잘되었을 때, 다 가졌을 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 내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지 않나.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고 너무 나눠주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 나는 대답한다. “내 그릇을 줄이지 말라.”고. 그러면 다들 웃곤 하지만 나는 아픔으로 인해 죽음 앞에 가보면서 느꼈다. 내일의 삶은 정말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임을. ‘내일 이렇게 할 거야.’는 이미 늦다. 오늘 이 순간을 멋지게, 부끄럽게 살지 않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거다. 나 자신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가식적일 필요는 없다. 마음이 아파가며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그랬다. 작은 말 한마디도 좋고 커다란 선물도 좋다. 그저 끝까지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자고. 내게 기쁨이 되는 그 마음을 충실하게 쫓으며 살기로 한 것이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난 이렇게 산 오늘 나 자신을 칭찬해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저작권자 ⓒ 강원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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