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니까

여지영 | 기사입력 2023/04/11 [01:01]

내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니까

여지영 | 입력 : 2023/04/11 [01:01]

▲ 춘천에서 언니 여지영     ©강원경제신문

나는 선물을 좋아한다. 선물을 받는 것도 물론 좋지만 특히 선물하는 걸 좋아한다. 누군가 내가 건넨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차피 선물을 할 거면 좀 더 특별한 걸 해주고 싶어서, 선물을 고를 때부터 이미 설레는 마음이 된다. 가격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평소에는 자신을 위해 절대 살 리 없는, 그러나 잘 어울리는 선물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게 난 참 기쁘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712월 설립한 고액기부자 클럽이다. 처음 가입해 얼마의 금액을 넣고 5년 동안 1억을 기부하면 된다. 돈이 많아서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 첫 모습을 보고 부잣집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다 펼쳐놓으면 우여곡절 많은 어떤 이의 인생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연이 많은 사람이 나다. 아너소사이어티가 되는 데에도 어려운 과정은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1억 원을 채우면서 혹시 저 사람, 말만 해놓고 안 하는 거 아니야?’ ‘기부도 다 안 해놓고 아너소사이어티인 척하네?’ 하는 따가운 눈초리를 참 많이도 받았다.

마침내 1억 원을 모두 기부하던 날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었다. 그렇게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었던 한 사람, 할머니는 마지막 헌정액 기부를 앞둔 두 달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돈이 많아서 기부한 것이 아니었다. 기부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날 하늘을 보며 할머니와 아빠에게 말했다. “나 잘했지?” “참 잘 컸지?” 그 말을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 너 해냈구나 하는 칭찬의 눈물, 사람들의 의심과 따가운 눈초리를 잘 참아냈구나 하는 대견함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누가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 순간 나는 나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있었다.

나에게 기부는 선물이다. 선물은 누군가를 위한 나의 마음이다. 내가 많은 것을 가져서 하는 게 아니라 정성이 담긴 노력이다. 나는 특정인을 위해 선물을 사기보다 눈에 보일 때 예쁜 것들을 사서 진열해놓고 인연이 생겼을 때 그중 하나를 소중하게 선물한다. 특히 신발을 많이 선물하는데 거기엔 함께 꽃길만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사이즈가 되었든 그저 눈에 보일 때 사두었다가, 신데렐라처럼 그 신발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건네주는 것이다. 마침 그 신발이 임자를 만났다 싶으면 선물을 받는 사람도 나도 아주 행복해진다. 우리는 꼭 함께 꽃길을 갈 거라고, 나는 가득 내 진심을 담아 선물을 보낸다. 그 선물은 우리의 인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좋은 길을 오래도록 함께 걷고 싶다는 내 마음은 어김없이 전달되기 마련이다.

5월은 내 생일이 있는 주간인데, 그때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꼭 선물을 한다. 아주 작은 것부터 집이나 차처럼 큰 선물까지. ‘열심히 잘해왔어. 잘 컸어. 잘했어.’ 하면서.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걸 칭찬하며 멋진 선물을 한다. 남에게 주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 주는 것도 기쁘다. 그 기쁨은 어려운 고비를 힘겹게 넘겨왔을수록 더 뜨겁다.

내가 주는 선물은 크고 작은 기부, 소소한 선물부터 큰 물질도 있지만 말 한마디도 있다. 자주 가는 중국집 이모에게 이모, 오늘도 예뻐요!” 하고 말을 건네고, 미용실 언니에게 어쩜 일하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까. 사랑해요, 언니!” 하고 말한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내가 건네는 이 작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선물이 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건 일상 속에 숱하게 듣는 부정적이고 상처가 되는 말보단 훨씬 힘이 되리란 사실이다. 그건 분명 충분히 값진 선물이다.

 

며칠 전 50대 초반의 한 지인이 돌아가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물을 건네는 것,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나누는 일은 내가 나중에 잘되었을 때, 다 가졌을 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 내일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지 않나. 사람들은 가끔 나를 보고 너무 나눠주는 것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면 나는 대답한다. “내 그릇을 줄이지 말라.”. 그러면 다들 웃곤 하지만 나는 아픔으로 인해 죽음 앞에 가보면서 느꼈다. 내일의 삶은 정말 누구도 알 수가 없는 것임을.

내일 이렇게 할 거야.’는 이미 늦다. 오늘 이 순간을 멋지게, 부끄럽게 살지 않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거다. 나 자신에게도, 또 누군가에게도. 가식적일 필요는 없다. 마음이 아파가며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그랬다. 작은 말 한마디도 좋고 커다란 선물도 좋다. 그저 끝까지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자고. 내게 기쁨이 되는 그 마음을 충실하게 쫓으며 살기로 한 것이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난 이렇게 산 오늘 나 자신을 칭찬해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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