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엄마들에게

여지영 | 기사입력 2023/05/16 [01:01]

나의 인생 엄마들에게

여지영 | 입력 : 2023/05/16 [01:01]

▲ 춘천에서 언니 여지영     ©강원경제신문

30년 만에 엄마를 만나는 기분.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30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나의 친엄마는 아빠의 바람기 때문에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을 했다. 내가 아마 5~6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고 했고, 극적으로 살아난 엄마는 아빠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건강을 되찾았다. 그런 엄마는 몸의 화상 자국 때문에 지금까지도 목티를 입는다.

할머니는 엄마를 보며 늘 미친년이라고 했다. 애 다섯 달린 유부녀가 총각인 아버지와 결혼했으니까. 할머니 눈엔 엄마가 미워 보였겠지만 아빠는 항상 우리에게 너희 엄마는 멋있는 여자, 예쁜 여자, 착한 여자, 고마운 여자라고 했다. 아빠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엄마 욕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빠에게 엄마는 영원히 좋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람을 피운 아버지가 때론 이해되지 않았고, 그런 아버지를 끝까지 기다리는 엄마도 어린 내 눈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가 떠나고 나는 할머니에게 남겨지면서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잃어버린 부모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면 그렇게 목 놓아 울었다. 나도 꼭 잘되어서 아침마당에 나가 엄마를 찾으리라 수십 번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자라서 수소문을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지만 엄마의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어 있어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더니 너 지영이 아니니? 너 엄마 소식 알아?” 하고 묻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민등록증이 말소되어 있더라고 말했더니 내가 너희 엄마 소식을 알아!”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당장 엄마 연락처를 얻어 찾아가 보겠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조심스러웠는지 혹시 모르니까 내가 네 연락처를 엄마한테 전해줄게. 조금 기다리고 있어봐.”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연락처를 건네주고 돌아와 며칠을 기다렸다.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그 며칠이 얼마나 답답하고 애가 타던지. 십수 년을 기다려 왔는데도 그 순간이 내겐 수백 년처럼 길었고 지루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가도 전화가 오지 않자 내 마음은 무너졌다. ‘엄마는 날 찾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만큼 엄마가 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거리곤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꿈틀거리던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건너편에서 여보세요?”라는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가 들어도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엄마 목소리.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전화를 붙들고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솟아올랐다.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지영이니? 엄마다.” 하고 말하는데 그 엄마란 소리에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는 꺼이꺼이 울었다.

 

며칠 후 엄마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런 만남은 결코 드라마 같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나는 1시간 넘게 차를 운전하면서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떤 말부터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일단 뜨겁게 끌어안아야 하나, 엄마는 많이 늙으셨을라나, 나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으려나온갖 생각을 다 하면서 눈물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본 엄마의 첫 마디는 왔니. 들어와 밥 먹어.”였다. 나는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서도 울컥거리는 마음을 참았다. 혹시 내가 울면 엄마가 울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엄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먹는 내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그렇고 우리 집 사람들 인물이 좋아서, 너 진짜 이쁘게 클 줄 알았더니. 어디서 선머슴 같은 게 나타났네. 엉덩이는 조선 반만큼 커가지고 말이야.”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했는데 엄마는 네가 아빠를 닮았으면 엄마는 아빠 안 만났다.”고 말했다.

흘렀던 눈물이 쏙 들어가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중에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로, 그날 내가 돌아간 후 어머니가 주방에서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내 앞에선 태연한 척했지만 그간의 그리움과 아쉬움이 한꺼번에 폭발해서 그랬을 것이다. 엄마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혼자 지냈지만, 단 한 번 아빠 원망을 한 적이 없고 11초도 아빠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언젠가는 당신에게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평생을 그리워했다고.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확실히 아빠를 사랑한 게 맞나 보다. 진짜 사랑은 내가 무엇을 받았는가보다는 내가 주고 싶은 마음만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나에게 낳아준 엄마는 한 분이지만, 키워준 엄마는 여럿이다. 아빠가 새 여자들을 여럿 데리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키우고 성장시키고 사랑해주는 엄마라고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처하는데, 실제로 그렇다. 할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사랑도 또 친어머니와 새어머니의 사랑도 나를 키웠지만, 그 외에 내 곁에 함께 해주었던 사랑도 나를 키웠다. 아마 혼자였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춘천에는 수십 명의 언니와 엄마가 있다. 울적할 때, 슬플 때, 감성에 젖어 들 때, 무지 외로울 때, 기분이 적적할 때언제든 함께 밥을 먹고 맥주 한 잔 기울여줄 엄마와 언니가 있다. 또 기쁠 때, 좋아 죽겠을 때, 칭찬받을 일을 했을 때그걸 나눌 엄마와 언니도 있다.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내줄 언니, 잘못된 길로 가면 바로잡아줄 엄마그 모두가 내겐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빠가 내게 만들어주지 못한 진짜 엄마 대신,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나를 붙잡아주고 함께해줄 엄마들. 내게 이미 주어진 환경을 비난하고 불행해지는 대신, 새로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을 부정 대신 긍정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나를 낳아준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모든 엄마들에게, 나는 매일 뜨거운 허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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