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좌절되는 순간에도 기억해야 할 것

여지영 | 기사입력 2023/09/26 [01:01]

꿈이 좌절되는 순간에도 기억해야 할 것

여지영 | 입력 : 2023/09/26 [01:01]

▲ 춘천에서 언니 여지영     ©강원경제신문

어릴 때 친구들은 나를 모두 춤꾼으로 기억한다. 발목 인대를 다치고 살도 쪄서 춤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금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 상상도 잘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내 삶은 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 또 새엄마가 와도 구박을 해오는 상황 속에서도 절대 놓지 않는 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예인이었다.

지금은 오디션도 많고 기획사의 문도 예전보다는 훨씬 열려서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연예인의 문턱은 턱없이 높았고, 춘천이라는 시골에서 그런 꿈을 키운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춤이 좋았다. <응답하라>라는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과거 생각이 폴폴 나기도 했다. 소위 춤 좀 춘다는 박진영, 현진영, 양현석 등은 나의 우상이자 스승이었다. 나는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하루를 꼬박 춤으로 채웠고, 저 멀리 어디서라도 음악이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는 사이 리듬을 타고 있었다.

학교에서 행사를 하거나 끼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공황장애가 올 것처럼 떨려도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대 전체를 휩쓸면서 춤을 추고 관객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마음껏 끼를 발휘했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릴 땐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친구들이 인기를 휩쓰는 법이니까. 책상 위에는 늘 후배들이 쓴 편지와 선물이 가득했고, 심할 때는 팬클럽을 만들어 단체로 혈서를 써서 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이 사실이 발각되어 풍기문란죄로 정학을 맞게 되자, 급기야 할머니는 학교로 찾아와 내가 받은 편지와 혈서를 교장실에 던지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내 아이 잘못이냐?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들 잘못이지!” 하면서. 그때 할머니의 모습이 그렇게 당당하고 멋있을 수가 없었다.

춤을 그렇게 좋아하고, 어딜 가나 주목을 받았기에 연예인이란 꿈은 쉽게 접을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절대 놓을 수 없는 꿈 하나 정도는 있는 법이니까. 언제 내게도 기회가 올까.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아마 지금처럼 유튜브와 SNS가 발달된 시대였다면 나를 어필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연예기획사에서 집으로 나를 찾는 전화를 걸어왔다. 대학교 시절. 나는 DJ로 엄청 유명했는데 집안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학교를 포기하고 밤낮 할 것 없이 아버지를 도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너무 바빠 할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집에 가끔 들르곤 했는데, 전화를 받은 할머니가 지영이 없다.”고 말하고는 내게 이야기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내가 소위 딴따라가 되는 게 싫기도 했고, 내가 아버지를 떠나면 아버지 혼자 힘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집에 온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화가 났다. 그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말대꾸를 하거나 화를 낸 적이 없던 내가 그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서 난동을 부렸다.

왜 그랬어요!!!” 하며 소리를 지르고, 보이는 것은 다 집어들어 부수고 던졌다. 아마도 내 생애 최고의 발악이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참고 참으며 버텨왔던 마음. 꿈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힘든 현실을 이겨내며 버티던 마음이 화산처럼 폭발하면서 주체할 수 없었다. 한참 악다구니를 한 후 씩씩대며 벌어진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나를 구석에서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던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없이 깨진 그릇들을 주우며 말씀하시는 거다. “내가 미안하다. 잘못했어.”

그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가슴이 아팠다. 당시 기획사에서 전화가 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고, 그런 기회가 다시 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연예인이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대 놓지 않았던 유일한 꿈이었으니까. 그 꿈이 사라지자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스스로에게 말해도 아픔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울며 그릇을 줍는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꿈은 내가 다시 만들면 되지. 세상을 원망할 게 아니라, 사람을 원망할 게 아니라, 다시 내가 만들어나가면 되는 거야, 라고. 꿈이 바뀐다고 해서 내가 바뀌는 건 아니니까. 나의 달란트, 나의 소망은 내 가슴에 그대로 있는 거니까.

 

그날, 내가 깨진 그릇과 함께 주웠던 건 원망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였다. 그리고 다시 0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나 스스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40대가 되어 앨범을 만들게 된 이유다. 어린 나이로 연예인으로 데뷔하겠다는 꿈은 접었지만 대신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내가 꼭 앨범을 내어 엔터테이너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정말 신나게 앨범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 꿈을 이어나갈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상황이나 사람 때문에 우리가 꿈꾸던 일이나 계획하던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면 세상이 무너지고, 꿈이 사라지고, 삶이 부서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꼭 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끝은 반드시 시작과 맞물려 있다. 그 순간 내가 다음 삶을 위한 리셋 버튼을 누르고 희망을 선택할지, 아니면 절망과 원망 속에 좌절된 꿈 때문에 실패자의 삶을 살아갈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너무 흔한 말이지만 결국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내가 가진 달란트를 포기하지 않고 어떤 꿈으로 승화시킬지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위너다. 세상은 생각보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마다 좌절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아픔 속에 살아가야만 한다. 마음을 한 뼘만 더 열고 과감하게 리셋 버튼을 눌러보자. 아직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 많이 남아 있다. 꿈을 버리는 대신 삶을 리셋하고 다음 스텝을 디뎌보자. 다음 발자국 밑에 새로운 꿈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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